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빛과 소금-노희경] 부자와 마음



평생 힘들게 일하며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홍콩영화 ‘영웅본색’의 주연배우 주윤발이 전 재산 810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돈은 내 것이 아니다. 잠시 내가 보관하는 것이다.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 내 꿈은 행복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식이다.” 그는 보통사람으로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싶었던 거다. 화려한 스타나 수천억원을 손에 쥔 부자가 아닌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고 보면 ‘마음먹기’가 참 중요한 거 같다. 날씨가 덥다고 무턱대고 짜증부터 낸다면 몸과 마음이 다칠 수 있다. 쓴 약도 몸에 좋다고 생각하면 달게 먹을 수 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직장동료나 상사를 대하느냐에 따라 원만하게 잘 지낼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기부도 그렇다. 평소 ‘나는 부족해’ ‘나는 돈이 없어’ ‘나는 가난해’라고 여겨왔는데, 어느 날 남을 위해 적은 돈을 나눴다. 이를 통해 가난하고 부족하다 여겼던 마음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면 우린 선택을 잘한 게 아닐까. 마음먹기를 잘하면 스스로 부요함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멀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게 쉽지 않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선 더 민감하다. 단돈 1000원을 환불받지 못해 시비가 붙으면서 결국 살인까지 하게 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그 예다. 연말이 되면 분명 택시 운전기사와 승객 간 폭행사건도 심심찮게 터질 것이다. 택시 거스름돈 몇 백원이 아까워 말다툼을 하다 급기야 폭행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사건들이다.

커피전문점에서 4000원 하는 커피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 마시면서 택시비 몇 백원이 아까워 서로 다투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돈에 좌지우지되는 게 우리 인간이라지만 중요한 걸 간과해선 안 된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는 부자가 되기도 하고, 진짜 가난해질 수 있다.

성경에서 부자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눅 18:24∼25)

부자를 비롯한 세상의 온갖 물질적 욕망에 빠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함으로써 천국에 입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 말씀이다. 이 땅에 재물을 쌓아놓고 사는, 바벨탑을 쌓으려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부자를 만드는 건 돈이 아니고 마음이다. 기부도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윤발 역시 평안을 얻기 위해 ‘통 큰’ 결정을 내렸고,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기독교 고전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내면을 가꾸는 삶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우리 내면에 그리스도를 위한 훌륭한 거처를 마련한다면 그분이 친히 오셔서 위로해주실 것이다. 그분의 모든 영광과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으며(시 45:13) 거기에 그분의 기쁨도 있다. 이 땅의 것에 집착하지 말자.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삼상 16:7). 사람은 행실을 고려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의도를 중시하신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사랑의 김장 나누기나 연탄 나눔 등 소외이웃을 돕는 캠페인들이 이어지고 있다. 12월이면 구세군 자선냄비도 등장한다. 기부나 나눔은 돈이 많아서, 부자라서 하는 게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부자의 마음이란 건 없다. 각자의 마음이 나를 부자로 만든다.

노희경 종교2부장 hkroh@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