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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고시원 소설



고시원 소설이란 장르를 하나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그 좁은 공간은 꽤 많은 작품의 배경이 됐다. 올해만 해도 ‘고시원 기담’ ‘고시맨’ 등이 출간됐고 ‘고시원 연쇄 화재 사건’이란 연극도 나왔다. 2015년 발표된 ‘카레가 있는 책상’의 주인공은 고시원에서 인스턴트 카레만 먹으며 지내다 카레 냄새를 풍겼다고 이웃에게 린치를 당한다. 비루한 삶은 그에게 “인간은 혐오할 만하다”는 확신을 주며 혐오범죄로 내몰았다. 2014년작 ‘서울동굴가이드’의 화자는 어린이 체험용 인공동굴에서 일하며 고시원에 산다. 동굴에서 퇴근하면 대낮에도 어두침침해 동굴 같은 고시원으로 귀가한다. 저자 김미월은 실제 고시원에 살았다. “방음이 안 돼 옆방 사람의 휴지 뽑는 소리까지 들리지만 옆방에서 누군가 자살해도 알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역시 고시원 생활자였던 전건우가 ‘고시원 기담’에 등장시킨 인물들의 프로필은 이렇다. ‘311호: 굿바이 스트레스란 가게에서 돈 받고 맞아주는 게 직업인 청년, 313호: 입사원서 100통만 써보자 했다가 99번 떨어져 단 한 번의 기회만 남은 취업준비생….’ 이 고시원 이름은 공부의 문이란 뜻의 ‘공문 고시원’인데 간판의 ‘ㅇ’ 받침이 강풍에 떨어져 ‘고문 고시원’이 됐다. 김애란은 일찌감치 2005년 고시원 소설을 발표하며 ‘노크하지 않는 집’이란 제목을 붙였다. 많은 사람이 살지만 인기척을 내선 안 되는 역설과 단절의 공간을 그렸다. 한 해 먼저 출간된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고시원 소설의 고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방(房)이라기보다 관(棺)이라 불러야 할 공간이었다’는 문장이 이 소설에 있다. 박민규는 1991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며 이렇게 썼다. ‘1991년은 일용직 노무자 등이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자 아직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

박민규가 그린 27년 전 고시원은 관 같은 방이지만 ‘고시’가 상징하는 계층 이동 사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인공은 형편이 나아져 고시원 탈출에 성공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고시원은 혐오범죄가 싹트고(카레가 있는 책상), 기괴한 이야기가 움트고(고시원 기담), 슈퍼맨 배트맨 같은 히어로(고시맨)를 상상해야 현실의 무게를 잊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국일고시원 화재로 7명이 사망했다. 그중 6명이 50대 이상 장년층이었다. 그들은 고시원에 살면서 고시원이 아닌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까. 창문 없는 방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살던 이들이 갔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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