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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일본은 ‘숨겨진 이민 대국’, 일손은 필요한데 이민은 싫고…

일본 NHK방송이 올 들어 특집기획으로 내보내고 있는 프로그램 ‘외국인에 의존하는 일본’ 코너 홈페이지. NHK는 어업,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여러 분야에서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일본의 현실을 보여줬다. NHK방송 캡처






해산물은 쌀과 함께 일본의 식문화 ‘와쇼쿠(和食)’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와쇼쿠는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외국인 고용 현황 자료(2017년 10월 기준)에 따르면 최고 굴 생산지로 꼽히는 히로시마현의 어업 종사자 6명 중 1명은 외국인이다. 또 일본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가쓰오부시를 많이 생산하는 고치현에서는 어업 종사자 12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NHK방송은 최근 특집기획 ‘외국인에 의존하는 일본’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프로그램에 따르면 히로시마현의 20∼30대 어업 종사자 중 외국인이 52.6%로 일본인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의 굴 양식은 현재 중국, 필리핀 출신 기능실습생이 없으면 운영이 불가능하다.

농업과 제조업, 서비스업 등 여러 분야에서도 외국인노동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제조업에선 인력 부족으로 흑자도산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9월 현재 흑자도산 기업은 299곳으로, 연말에는 지난해 전체 317곳을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의 시장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는 구인난으로 도산하는 기업 수가 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력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인건비를 올리다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사례도 올해 17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1.6%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결국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현상에 맞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문호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일 내각 회의에선 ‘특정기능 1호’ ‘특정기능 2호’라는 새로운 체류자격을 만드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특정기능 1호(요식업, 제조업, 농어업)는 일정 수준의 기능 보유자에게 5년까지 단독 체류를 허가한다. 특정기능 2호(건설, 자동차 정비, 조선업 등)는 숙련된 기능 보유자에겐 10년까지 가족 동반 입국을 허용한다. 일본 정부 목표대로라면 내년엔 4만명 정도의 외국인노동자를 새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은 치안 불안, 의료보험 재정 악화, 일본인 고용 확대 차원에서 외국인노동자 수용에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인력 부족이 워낙 심각하다보니 이민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정책 방향을 완전히 바꾼 셈이다.

2017년 10월 현재 일본 내 전체 외국인노동자는 127만명에 달한다. 1년 새 18%, 19만여 명이 증가했다. 일본 내 노동자의 1.9%로, 50명 중 1명은 외국인인 셈이다. 국적별로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브라질 등의 순이다.

한국인의 경우 외국인노동자 중 전문가와 단순 노동자 사이에 있는 ‘핵심 외국 인재’로 각광받고 있다고 일본 잡지 하버비즈니스가 12일 보도했다. 특히 IT기업에선 일정 수준의 의사소통과 사무 능력을 가진 한국 젊은이들 수요가 많다.

기존 노동력 공급수단이 돼 온 기능실습생 제도의 부작용이 여전한 상황에서 외국인노동자 수용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외국인이 저임금 노동시장을 장악하면서 관련 분야의 노동 여건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법취업과 인권침해 문제도 우려된다.

아베 총리는 “이민 정책이 아니다”고 강변하지만 ‘일본은 숨겨진 이민대국’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는 ‘이민이 아니다’면서 정착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외국인들을 눈앞에 두고도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을 방치해왔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을 값싼 ‘단순 노동력’으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일손 부족 해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는 정책에는 관심이 없다.

일본 국민이나 기업 역시 외국인과의 공생에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지통신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인구가 감소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응답자의 50%를 넘는다. 하지만 이들 응답자 가운데 ‘지역사회에 외국인노동자나 이주자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14.6%에 불과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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