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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서울형 유급병가’ 성공하려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돈 먹는 하마로 불렸던 비급여 의료비의 건강보험 급여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어떤 질병에 걸려도 매년 최고 3천만 원까지 의료비를 지원해 주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가 완비됨에 따라 건강보험 사각지대 환자들의 의료비 문제는 큰 폭으로 개선됐다. 이제 남은 숙제는 질병으로 인해 소득상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국가로부터 매달 생계급여를 받고, 업무로 인한 질병이나 부상을 입은 근로자는 산재보험이나 기업복지가 잘 되어 있는 기업체에서는 유급휴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업무와 무관한 질병에 걸려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나 자영업자가 한 가정의 가장이거나 독거세대인 경우 치료기간 동안 소득활동을 할 수 없다. 이 경우 환자는 치료비 부담뿐만 아니라 소득상실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이는 가족의 생계와 자녀의 양육, 교육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질병으로 인한 가난은 자녀에게까지 대물림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질병으로 인한 치료기간 동안 상실된 소득을 보전해 주는 사회안전망으로 공보험 체계를 운영하는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상병수당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1월 1일부터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규정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료 인상 및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법적 근거가 있음에도 상병수당제도 도입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이런 상황에 최근 서울시에서 먼저 저소득 비정규직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에게 질병·부상 등의 사유로 병원 치료 시 소득 감소 부분을 보전해 주는 사회보장제도인 ‘서울형 유급병가’ 도입 계획을 발표한 것은 환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서울형 유급병가’의 핵심 내용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중위소득 100% 이하인 근로소득자 및 자영업자 중 입원 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1일 서울시 생활임금(2019년 8만1184원)에 해당하는 현금을 1일부터 15일까지 지원하고, 여기에 건강검진 1일 비용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간 최대 15일의 급여기간은 제도 도입 취지상 너무 짧아 시행 후 오히려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우려가 있다. 급여기간을 연간 최대 3개월까지로 우선 시작하고 평가를 통해 연간 최대 급여기간을 추후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급여기간은 획일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의사의 의료적 판단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하는 방안이 타당하다.

성공적인 ‘서울형 유급병가’ 도입을 위해서는 최근 오현정 시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안이 신속히 서울시의회를 통과해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 환자들이 중복 수혜를 받지 않고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근로복지공단, 의료기관 등 관련 기관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서울형 유급병가’ 도입이 기업체에서 산재보험 운영이나 유급휴가 혜택 축소로 이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가 퇴원 후 180일 이내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해 해당 환자들의 불만이 계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처럼 서울시민들이 ‘서울형 유급병가’를 몰라서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대상자 사전 통보나 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사가 관할 수혜 대상자를 찾아서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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