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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어떻게 소련의 지지를 받았나

1945년 8월 30일 ‘붉은 기 훈장’을 받은 김일성(가운데) 당시 소련군 대위가 미하일 칸 소령과 메클레르 중령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한울아카데미 제공
 
1945년 평양에 입성하는 소련의 ‘붉은 군대’. 한울아카데미 제공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북한 정권이 설립되지도, 한반도가 분단되지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김일성 이전의 북한’은 소련이 참전한 1945년 8월 9일부터 김일성이 평양에서 연설한 10월 14일까지 아시아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67일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 국적의 소장 역사학자 표도르 채르치즈스키(한국명 이휘성)는 소련의 풍부한 1차 사료와 처음 공개되는 증언 등을 토대로 그 격동의 시간을 정밀하게 담아냈다. 한국어로 쓰인 이 책은 문장이 간결하고 구성이 단순하기 때문에 학술적인 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저자는 서론에서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려면 그 출발점이 되는 1945년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고,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는 미래의 북한 독자들을 위해 김일성이 어떻게 소련의 지지를 받아 그들의 지도자가 됐는지 썼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소련은 병력 100만명을 극동 지역으로 옮긴 뒤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8월 9일 전쟁에 돌입했다. 소련의 ‘붉은 군대’는 웅기, 어대진, 나진, 청진 4개 항구에 상륙작전을 실시했고 어렵지 않게 일본에 승리한다. 당시 소련군은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가져왔다’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를 곳곳에 붙이고 대대적인 선전전을 했다.

8월 10일 미군 대령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은 한반도 내 미국과 소련의 점령지 구분 계획을 만들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 그들이 가진 지도는 미국 국립 지리학회가 출판한 ‘아시아와 인접지’였는데, 여기엔 조선의 행정구역도 없고 도시명도 일본식 한자 발음이었다. 예를 들어 인천은 진센(Jinsen), 개성은 가이조(Kaijo)였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한반도 지도 위엔 북위 35도와 40도가 표시돼 있었다. 두 대령은 편의상 그 중간인 38도를 분계선으로 결정했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8월 14일 이를 공포하고, 소련의 스탈린도 이의 없이 승인하면서 38선은 70년 넘게 우리 민족을 갈라놓는 경계가 됐다. 강대국이 좌지우지한 우리 역사의 상징적 장면이다.

김일성의 등장은 아직도 수수께끼가 많다. 스탈린은 북한 지도자로 “스탈린에게 복종할 조선인”을 원했다. 김일성은 극동전선의 소련25군 산하 조선인 중심의 88여단 1대대장이었다. 그는 8월 30일 소일전쟁에 대한 공훈으로 ‘군사 붉은 기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88여단이 귀국한 9월 19일에도 그의 지위는 불확실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북한 지도자 후보는 조만식이었지만 조만식은 소련과의 협력을 거부했다. 다음으로 박헌영과 김일성이 있었다. 소련 외교관과 정보원들은 국제공산당 활동을 한 박헌영을 지지했고, 장군들은 소련군 대위 출신인 김일성을 밀었다. 귀국 후 김일성은 소련 인맥에 닿기 위해 애썼고, 10월 14일 ‘조선 인민의 영웅’으로 소개받으며 북한 주민 앞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 2개월여는 북한 주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유일한 시기다. 당시 북한에서 활동한 정당 중 민족사회당의 13가지 강령 중에는 ‘25세 이상 남자에게 피선거권 부여’, ‘매음굴 등급 구분 실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소련군의 전횡은 하늘을 찔렀다. 식량 약탈은 예사고 여염집 여인들을 수없이 겁탈했다. 보다 못한 한 노인이 “내 재산을 모두 줄 테니 조선 여인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호소한 기록도 있다.

해방 직후 이북의 상황이나 김일성의 등장을 소개한 대중적 역사서는 드물다. 있다 해도 이념적으로 편향된 부분이 많았다. 취재를 하거나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 학자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쓴 이 책은 북한 정권 탄생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면서, 한반도 분단에 대해 깊은 통찰을 던진다.

198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저자는 역사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 2011년 한국으로 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북한 군대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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