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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에 대해 묻고 싶었어요”





소설을 읽다 성경을 펼친 건 처음이었다. 한국 문단에서 가장 기발하고 기막힌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이기호(46·사진)가 신작 장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현대문학)를 내놨다. 부제는 ‘욥기 43장’이다. 성경 속 고난을 상징하는 인물인 욥이 암시하듯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순진무구한 교회 누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가 젠체하는 교회 오빠의 얘기라면 이 작품은 근엄한 교회 아저씨의 의뭉한 사연이다. 작가가 교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많이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작가는 2일 “원래 신학대를 준비하다가 집안의 반대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지금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독실한 신자”라고 소개했다. 성경을 모티브로 소설을 쓰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않은 이력이었다. 작가는 “성경은 예수라는 거대한 한 예외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늘 감동적이고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자주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시골 한 교회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조사하는 형식이다. 이 교회는 지역 유지인 최근직 장로가 세웠다. 그는 젊은 날 교통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한때 절망에 빠졌다가 하나님을 만난 뒤 새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이 화재로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자 교회 담임목사인 최요한 목사가 숨진다.

작가는 “꽤 오래전부터 ‘욥’에 대해 생각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늘 의문이 남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욥을 보면서 이 시대의 ‘죄 없으나 고통받는 사람’ 얘기를 쓰게 된 것”이라고 했다. 소설은 12명의 화자가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최 장로와 그 아들에 대해 보고 느낀 것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중심은 최 장로의 삶에 불어닥친 고통이다. “예기치 않은 고통이 우리 앞에 찾아왔을 때, ‘우리는 과연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가 작가로서 나의 의문이었다. 최 장로는 자기 앞에 도착한 첫 번째 고통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했고, 그 수치를 잊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설명했다.

발랄한 ‘이기호식’ 소설을 기대한다면 조금 부담될 줄거리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작가는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또 여러 이웃의 증언은 타인의 고통을 보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사건 전모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웃들의 모습이 성경에 등장하는 욥의 친구들, 빌닷이나 엘리바스 같은 모습으로 보이길 바라면서 썼다”고 했다.

소설을 읽다 시련 앞에 선 ‘욥과 그 친구들의 모습’(욥기 1∼42장)을 성경에서 다시 들춰보게 된다. 고통 앞에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내 삶에 불현듯 고통이 방문한다면 이 고통 후 이어질 나만의 ‘욥기 43장’은 어떤 내용이 될지 자문도 하게 한다.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의를 이 정도로 기발하게 할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이기호는 이야기꾼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나보다 더 뛰어난 이야기꾼이 많다. 한국 소설의 스펙트럼은 꽤 넓고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감탄하게 되는 동료 작가의 작품을 자주 만난다. 난 기존 한국 문학과 좀 다르게 쓰기 위해서 노력할 뿐 특별한 건 없다”며 겸손했다.

1999년 등단한 이기호는 최근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한국일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사과는 잘해요’ 등이 있다.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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