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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에 숨겨진 몽환적 속살... 강원도 인제의 가을 풍경

강원도 인제군 남면 갑둔리 446번 지방도에서 본 ‘비밀의 정원’. 빨갛게 노랗게 물든 단풍에 물안개와 서리가 더해지고 S라인 길에 고라니가 지나가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은 은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하트 모양 바위 사이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용소폭포.
 
10월 추천 국유림 명품 숲으로 선정한 원대리 자작나무숲.
 
물줄기가 치맛자락처럼 흘러내리는 방태산 이단폭포.


그곳으로 가는 길에 설렘이 가득했다. ‘시크릿 가든(비밀의 정원)’이라니. 처음 만난 비밀의 정원은 몽환적이며 황홀한 풍경을 안겨줬다. 빨갛게 노랗게 물든 단풍만 해도 아름다운데 물안개에 서리까지 더해지고 S라인 길에는 고라니도 지나가니 ‘금상첨화’였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큰 수고로움 없이 도로변에서 바로 볼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런 경치였다.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비밀의 장소를 찾아 떠났다.

비밀의 정원은 주변에 특별한 건물이 없다. 캄캄한 어둠 속에 내비게이션을 따라 현장에 도착했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어둠이 걷히자 비밀의 정원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이 벗겨지듯 물안개 자욱한 깊은 산 속의 속살을 서서히 내보였다.

바로 앞에는 빨간 단풍이, 그 옆엔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파스텔 톤의 가을색을 시리도록 찬란하게 뽐내고 있다. 단풍 너머 멀리 낮은 구릉지에 시선을 던지자 밤새 내린 새하얀 서리를 머리에 인 작은 나무들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엎드려 있다. 주변 산지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자리잡은 나무숲은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숲 위에는 안개가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어 구불구불한 산길이 신비의 세계로 향하는 길처럼 보인다. 누군가 꼭꼭 숨겨놓은 비밀의 정원은 몽롱한 꿈결에서나 봄 직한 풍경이다.

산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서 빛줄기를 뿜어낸다. 정원을 휘감아 돌던 안개가 선녀의 옷처럼 나풀거리고 나무 위 서리는 은구슬처럼 반짝인다. 꿈결 같은 정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선경이나 다름없다. 이 모습을 담으려는 열정 넘치는 사진가 수백 명이 왕복 2차선 도로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곳은 군부대 훈련장이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덕분에 자연은 훼손되지 않고 보는 이들에게 은밀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답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사진가에 의해 공개된 뒤 전국구 출사명소가 됐다.

비밀의 정원에서 가까운 곳에 인제 용소폭포가 있다. 상남면으로 향하다 서울양양고속도로 아래에서 우회전하면 작은 도로가 연결된다. 차 한 대가 오고 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직전에 주차한 뒤 오른쪽 돌계단 길을 오르면 평평한 나무데크 길이 이어진다. 길 바로 아래 계곡 물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5분 정도 걸어가면 갑자기 탁 트인 폭포가 눈앞에 나타난다. 폭포 입구에서 안쪽으로 깊이 팬 하트 모양의 바위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전망대에 오르면 물줄기가 휘감아 돌며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폭포 아래 용이 머무른 소가 있어 붙은 이름으로, 상남폭포라고도 한다.

폭포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독특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용에게 간절히 비는 게 아니라, 용을 노하게 하는 방법이다. 폭포에 개의 피를 흘리면 용이 부정한 피를 씻어내려고 뇌성벽력을 치며 큰비가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산림청이 10월 추천 국유림 명품 숲으로 선정한 원대리 자작나무숲도 빼놓을 수 없다. 원대리 원대봉(684m) 능선에 1990년대 초반에 조림됐다. 산림청이 약 138㏊(41만여 평) 규모에 자작나무 70여만 그루를 심었다. 나무의 가슴높이 지름은 평균 14㎝, 평균 높이는 10m다.

자작나무는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가을 단풍 옷을 입은 숲의 모습이 빼어나다. 숲에 들면 하얀 알몸을 한 자작나무가 ‘자작자작’ 가을 얘기를 들려준다. 향긋한 나무 냄새가 코에 스며들고 머릿속은 하얗게 맑아진다. 귀인의 살결 같은 수피는 황홀한 은빛을 발산한다.

푸르던 잎은 노랗게 물들고 있다. 새하얀 가지에 매달린 노란 나뭇잎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린다. 나무 사이 알록달록 단풍이 이국적 아름다움을 더한다. 자작나무숲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50여분이면 충분하다. 통나무로 만든 정글집, 나무의자, 그네 등이 쉼을 내준다.

자작나무는 유용하게 쓰였다. 겨울에도 불이 잘 붙는 껍질은 땔감으로 썼다. 인도 등에서는 글을 쓰는 종이를 대신했다. 수액과 껍질은 약으로도 쓰였고 껌으로 유명한 자일리톨 성분도 이 나무에서 추출한다.

인제에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곳이 또 있다. 계곡 단풍이 고운 방태산 이단폭포다. 1997년 개장한 방태산자연휴양림 안에 높이가 각각 10m, 3m쯤 되는 폭포 두 곳에서 물줄기가 치맛자락처럼 쏟아진다. 남성적인 위쪽 폭포를 흘러내린 물은 넓은 암반에서 숨고르기를 한 뒤 여성적인 아래쪽 폭포를 향한다. 폭포 주변 울긋불긋 가을색을 입은 나무들이 물속에 그대로 반영되며 화려한 가을날 풍광을 그려내고 있다. 물소리도 청정 자연의 빛깔을 닮았다.

높이 1444m인 방태산은 깃대봉(1436m), 구룡덕봉(1388m)과 능선으로 연결돼 있다. 정상에 서면 연석산(1321), 응복산(1156), 가칠봉(1240)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태산에서는 다른 산에 비해 다양한 단풍나무를 만날 수 있다. 굴피나무, 굴참나무, 느릅나무, 단풍나무, 당단풍, 떡갈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 덕분이다.

▒ 여행메모

446번 지방도에 비밀의 정원·용소폭포
‘준이네 통나무집’ 곤드레철판나물밥 별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강원도 인제 ‘비밀의 정원’에 가려면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나들목에서 빠져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 방면으로 간다. 다물교차로에서 우회전해 446번 지방도를 따라 6∼7분 정도 이동하면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인제군 남면 갑둔리 122-3’으로 찾으면 된다. 도로변이 촬영 포인트다. 용소폭포는 비밀의 정원에서 가깝다. 446번 지방도를 따라 상남 방면으로 15분 정도 가면 된다. 차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5분가량 걸어가면 된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44번 국도를 이용해 남전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우회전한 뒤 인제종합장묘센터(하늘내린 도리안) 방향으로 이동하면 된다. 방태산자연휴양림은 원대리 자작나무숲 입구에서 원대삼거리로 가다 우회전해 31번 국도를 타고 기린면 소재지(현리)를 지난 뒤 진방삼거리에서 진동리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원대리 자작나무숲 인근 원대막국수가 맛집이다. 막국수와 감자전이 주 메뉴다. 방태산자연휴양림 인근 방동막국수도 유명하다. 인제를 오가는 길에 있는 맛집으로는 홍천군 두촌면 동홍천나들목 인근 ‘준이네 통나무집’이 있다. 텃밭에서 직접 키운 식재료를 사용한다. 곤드레철판나물밥이 인기메뉴다. 단순한 돌솥나물밥이 아니라 철판으로 이뤄져 쌀쌀한 가을철에 따뜻하고 재미있게 먹을 수 있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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