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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당신의 정자·난자는 건강하십니까

난임·불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자신의 생식 능력을 미리 체크해 보려는 미혼 남녀들이 늘고 있다. 난임은 성숙하고 건강한 정자와 난자가 있어야 예방 가능하다. 사진은 정자들이 난자를 찾아 자궁 속을 헤엄쳐 가는 모습. 게티이미지 제공
 
차병원 서울역센터 37난자은행 소속 연구원이 영하 198도의 극저온 탱크에 냉동 보관된 난자를 살펴보고 있다. 동결 난자는 필요시 해동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에 쓰인다. 차병원 제공






결혼 적령기 넘기고 결혼할 경우 임신율 줄고 난임 가능성 높아
작년 男 난임자 2013년 比 45%↑
여성은 나이가 가임력에 큰 영향, 30세 후 생식 능력 떨어지기 시작 35세 넘으면 난임 위험 급격 증가
최근엔 결혼·출산 계획 없어도 미래 임신·분만 위해 난자를 채취, 냉동 보관하는 ‘소셜 뱅킹’ 늘어


#1.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 정모씨는 평소 생리 주기도 일정한 편이고 특별한 증상이나 가족력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가임력 검진 클리닉을 찾았다. 검사 결과 난소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은 38세로 나왔다. 초음파 검사에선 왼쪽 난소에 자궁내막종이 의심된다는 소견도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충격을 받은 정씨는 “아직 계획은 없지만 꼭 결혼해 아이를 갖고 싶다”며 “가임력 보존을 위해 난자 뱅킹(냉동 보관)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2. 오는 12월 결혼을 앞둔 30대 초반의 남성 장모씨는 정액 안의 정자 수가 적은 ‘희소 정자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결혼 후 임신이 안 될까 불안하다”면서 “의사가 처방해준 항산화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하루 30분씩 운동하며 고환 건강 유지에 노력하고 있다. 술, 담배도 끊었다”고 했다.

남성 난임 45% 급증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 적령기를 놓치고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결혼을 하면 임신율이 떨어지면서 난임(불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남녀가 마찬가지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난임·불임 진단자는 2013년 19만2457명에서 지난해 20만8703명으로 8.4% 늘었다. 여성의 경우 2013년 14만9363명에서 2015년 16만5003명으로 증가했다가 지난해 14만6235명으로 다소 줄었다. 반면 남성은 2013년 4만3094명에서 지난해 6만2468명으로 45%나 급증했다.

난임은 피임하지 않고 1년 이상 정상 부부관계를 가졌음에도 임신이 안 되는 경우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난임 증가 추세에 대해 늦어진 결혼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나이 자체가 고령화되고 있고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임신 성공률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여성은 특히 나이가 가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성의 생식 능력은 30세 이후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 만 35세를 넘으면 급격히 감소해 난임이나 임신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나팔관 폐쇄나 자궁 근종 및 기형, 난소 질환, 흡연 등도 여성 가임력 저하의 원인으로 꼽힌다. 가장 큰 원인은 배란장애다. 과도한 스트레스나 다이어트 등으로 호르몬이 변화하거나 갑상샘 등 내분비기관에 질병이 있을 경우 생리가 불규칙해지거나 무월경 증상이 나타나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남성은 가임력을 가르는 특별한 연령 기준은 없다. 나이 들면서 정자 수와 운동성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크게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정계 정맥류와 발기 부전, 사정 장애, 내분비 장애, 고환 기능 문제 등이 가임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특히 정계 정맥류는 남성 난임 원인 1위로 약 30%를 차지한다. 고환에 연결된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음낭 안에서 꼬부라지고 뒤틀리는 질환이다. 전체 성인 남성의 15∼20%에서 발견될 정도로 흔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20대 초반에 많이 진단된다.

김대근 차병원 서울역센터 비뇨의학과 교수는 15일 “일부는 고환에서 통증이나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아 지나치기 십상”이라며 “30대에 임신이 안 돼서 병원을 찾았다가 정계 정맥류를 발견하는 일이 흔하다”고 설명했다. 발병했지만 수년간 모르고 지내다 결혼 후 난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서 있을 때 음낭에서 포도송이처럼 울퉁불퉁한 게 만져지거나 보이면 정계 정맥류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계 정맥류는 일찍 발견해 수술받으면 가임력이 회복된다. 이밖에 비만과 운동 부족, 과도한 음주, 지나친 동물성 지방 섭취, 고환의 열에 대한 노출, 고환의 구조적 문제(잠복 고환), 항암 및 방사선 치료 등도 남성의 가임력에 악영향을 준다.

김 교수는 “특히 정자가 만들어지는 고환은 체온보다 2∼4도 낮게 유지돼야 하는데, 잦은 사우나나 타이트한 속옷 착용, 자전거 타기, 노트북 사용 등이 고환 온도를 올릴 수 있다”면서 “음낭 온도가 올라가면 정자의 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정자 이상도 난임으로 이어진다. 정액에 정자가 하나도 없으면 무정자증, 정액 1㏄당 정자가 1500만 마리 이하면 ‘희소 정자증’, 500만 마리 이하면 ‘심한 정자 감소증’으로 진단된다. 일반인의 평균적인 정자 수는 정액 1㏄당 7000만 마리다. 자연 임신이 가능하려면 1500만 마리 이상 들어 있어야 한다.

정자의 운동 능력도 중요하다. 검사한 정액 안 정자의 40% 이상에서 움직임이 있으면 정상으로 판정된다. 또 전체의 32% 이상에서 앞으로 전진하는 능력이 있으면 직진운동성에 문제가 없다.

김석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최근 난임 원인 가운데 남성 쪽 요인이 40%를 차지할 정도로 남성 난임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정계 정맥류나 정자 이상 등의 질환이 급격히 증가했다기보다는 난임을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남성들도 함께 원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 가임력 정상일까

난임·불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불안감이 커지면서 자신의 생식 능력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미혼 남녀도 늘고 있다. 한 번 떨어진 가임력은 회복이 어려운 만큼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조기에 찾아내 관리·치료하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차병원 서울역센터는 지난 5월 국내 처음으로 ‘가임력 체크업 클리닉’을 오픈하고 본격 서비스에 들어갔다. 김대근 교수는 “20대는 조기 폐경 증상이 있는 여성, 생식기 관련 수술 경험이 있는 남성들이 많이 찾는다. 남성은 결혼 적령기인 30∼38세가 주로 오고 여성은 결혼 적령기가 지난 30대 중·후반에서 40대 골드미스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또 “남성들은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싶어 하고, 여성들은 결혼이 조금 늦었지만 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차병원 서울역센터 산부인과 김란 교수는 “최근 고령의 남녀 연예인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가임력 검진과 난자 동결에 대한 정보 공유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성은 난자 수 감소를 파악하는 난소 나이 검사를 비롯해 여성호르몬, 자궁 및 난소 초음파 검사 등을 시행한다. 남성은 성기능이 떨어지는 원인을 찾는 호르몬 검사와 정액 검사 등이 이뤄진다.

건강할 때 난자·정자 보관 추세

차병원 측은 클리닉에서 지금까지 검진받은 여성의 10%가 가임력 보존을 위해 난자 뱅킹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난자 뱅킹은 과거 암이나 백혈병 등으로 인해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할 여성들이 난자 손상을 우려해 미리 보관했다가 치료가 끝난 뒤 임신(인공수정 혹은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도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현재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없음에도 미래의 임신 및 분만을 위해 난자를 미리 채취하고 냉동 보관하는 이른바 ‘소셜 뱅킹’(사회적 난자 냉동 보관)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젊고 건강한 시기의 난자를 보존해두면 결혼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폐경 이후 동결 보관됐던 난자를 이용해 임신에 성공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김란 교수는 “특히 조기 폐경 가능성이 높을 경우 난자 뱅킹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자매나 가족 중 조기 폐경을 겪은 사람이 많다면 병력 상담과 함께 난소 나이 검사를 통해 ‘조기 폐경’ 고위험군이 아닌지 알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과거 임신한 적이 있으나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이른바 ‘2차성 난임’을 겪는 사람도 많은데,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사람도 난자 냉동 보관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차병원의 난자 뱅킹은 2013년 23건에서 2016년 233건, 지난해 288건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소셜 뱅킹의 경우 2016년 85건에서 지난해 116건으로 36.5% 늘었다.

반면 정자 냉동 보관의 경우 연 300여건씩 이뤄지고 있지만 소셜 뱅킹 사례는 아직 없다. 김대근 교수는 “정자 뱅킹은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앞둔 환자들이 주로 시도한다”면서도 “최근 과로나 스트레스, 비만, 음주, 흡연, 전자기기 사용 등 건강한 정자 생성을 막는 사회적 요인이 점점 많아지면서 가임력 보존을 위해 정자 소셜 뱅킹을 문의하는 남성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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