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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에게 묻다] “설사·복통이 잦으면 염증성 장 질환 의심하세요”

천재희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운데)가 크론병으로 인한 장염과 설사가 심해 입원해 집중치료를 받고 있는 중년 남성 환자에게 퇴원 후 철저한 자기관리의 중요함과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지훈 기자
 
천재희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천재희(사진) 교수는 식도 위 소장 항문에 이르는 소화관 전체에 만성 염증과 궤양을 일으키는 희귀·난치성 질환, 크론병의 전문가다.

천 교수는 2011∼2012년 UN국제백신연구소에서 장점막면역학을 집중 연구했다. 장내 베체트병에 대한 항종양괴사인자 치료, 궤양성대장염 관련 새로운 유전자 변종 확인 연구 등 그동안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크론병 관련 논문 수가 230여 편에 이른다. 그 공로로 2007년 대한소화기학회 얀센 학술상, 2007년 연세의대 임상분야 최우수 교수상, 2010년 대한장연구학회 학술상, 2012년 아시아태평양소화기학회 이머징 리더십 강사상, 2014년 연세대 추천 환자 치료를 위한 최고의 교수상, 2017년 제50회 유한의학상 대상,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KFDA) 연구개발전시회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백신연구소 점막면역학과 객원연구위원 겸 희귀난치질환 자문의, 연세메디칼저널 편집인, 한국베체트학회와 대한면역학회, 한국임상영양학회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염증성 장질환 클리닉을 이끌며 크론병 환자 3500여명의 건강관리도 책임지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뉴스레터를 발행, 환자들에게 염증성 장질환 관련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천 교수에게 크론병이란 무슨 병이며,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10∼20대 괴롭히는 희귀·난치성 질환

크론병은 궤양성대장염, 베체트장염과 더불어 3대 염증성 장 질환으로 분류된다. 최근 20년간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학업과 취업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있는 10∼20대 때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2017년 국내 병원서 새로 크론병 진단을 받은 환자가 약 1만7000명에 이른다.

크론병은 난치성 질환이다. 발병 원인을 아직 확실히 모르고 치료법도 뚜렷한 게 없다. 따라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며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천 교수는 “환경적 요인에 유전적 요인, 면역학적 요인, 장내 미생물총 균형이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 및 증상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내에 유독 나쁜 미생물이 많거나 장내 궤양을 촉진하는 면역인자의 활성이 높아졌을 때는 물론 나쁜 식습관과 흡연, 스트레스 등이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면역 생물학적 제제 개발에 희망 걸어

크론병은 환자에 따라 환부와 범위, 염증의 정도가 아주 많이 다르다. 따라서 치료 시 눈에 보이는 임상 증상에 맞춰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보통 발병 초기엔 설파살라진과 메살라민 같은 항염제와 스테로이드제가 주로 사용된다. 항염제는 장기 사용에도 비교적 부작용이 적은 게 장점이지만 치료 효과가 약한 게 흠이다. 스테로이드제는 치료 효과가 좋으나 장기 복용 시 자칫 관절 손상 등 전신 부작용이 우려돼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들어 이런 부작용을 피할 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게 ‘아자티오프린’과 같은 면역조절제다. 염증 매개체와 사이토카인이 염증성 장 질환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다. 여러 사이토카인 중 TNF-α를 억제하기 위한 연구가 특히 많이 이뤄지고 있다. 1998년 처음 등장한 생물학적제제 인플릭시맙과 아달리무맙 연구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들 생물학적제제 역시 치료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약 3분의 1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투약 초기 효과를 보이던 환자들도 약 3분의 1은 내성이 생기는지 점차 약발이 듣지 않게 된다. TNF-α와 경로가 다른 IL-12/23, JAK, 인테그린(integrin) 등과 같은 새 생물학적제제가 속속 개발되는 이유다.

다양한 중개연구가 치료에 도움

크론병은 장이 들러붙거나 장에 구멍이 생기는 장협착과 누공, 농양 등의 합병증을 유발한다. 이때는 돌이킬 수가 없어 수술로 장의 일부를 잘라내고 다시 이어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크론병 진단 후 첫 5년이 지나면 약 38% 환자들이 장 절제수술을 받는다. 10년 후엔 48%, 20년 뒤엔 절반 이상(58%)이 수술을 받게 된다.

이 고통을 피하는 방법은 크론병에 대한 임상경험이 풍부한 의사와 함께 증상 없이 지내는 기간(관해기)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뿐이다.

천 교수팀은 2006년부터 크론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약제 개발에 필요한 임상시험연구와 기초실험연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중개연구를 적극 추진 중이다.

천 교수팀은 장 내부에 늘 머물고 있는 바이러스 TLR3/7가 염증성 장 질환 발병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데 이어 한국인 크론병과 유전자 OCTN2의 연관성을 최초로 규명해 주목을 받았다. 약을 쓰기 전 부작용이 생길지 여부를 평가, 예측하는데 유용한 유전자와 베체트 장염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발굴했다. 크론병 환자 치료 시 어떤 약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고리즘을 만들어 적용하는 개인맞춤 치료를 시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천 교수팀은 약제 선택 전 여러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고 약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투약 용량과 모니터링 간격을 조절하는 유전자 스크리닝 시스템도 도입해 시범 운영 중이다.

대변이식술로 장내 미생물 환경 개선도

크론병 등 염증성 장 질환 환자의 대변과 장점막을 검사해보면 비정상 박테리아가 보이고 미생물군의 다양성이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미생물은 진핵생물, 박테리아와 같이 우리 몸속에 기생하는 존재다.

대변이식술(FMT)은 이들 미생물군의 장내 균형을 맞춰줘 크론병을 이겨내는 치료법이다. EMT는 건강한 공여자 대변에서 추출한 장내 미생물들을 이식해 크론병 환자의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해주는 방식이다.

크론병 외에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C.Difficile)’균 감염 장염과 과민성 장 증후군 치료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천 교수는 “병에 대해 지나친 걱정은 되레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본인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을 선택해 치료에 집중하면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등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면 난치성 크론병도 못 물리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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