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비핵화 로드맵 제시했지만, ‘합의→파기’ 반복의 흑역사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과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 비핵화 합의를 수차례 파기한 전력이 있어 어렵게 조성된 비핵화 국면이 또다시 좌초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는 합의와 파기를 반복해 왔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하며 북·미 대화의 물꼬를 텄다. 북·미 고위급 회담을 거쳐 이듬해 북·미 제네바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해온 사실이 드러나자 북·미 관계는 다시 경색됐다. 이후 북핵 문제는 6자회담 틀에서 논의됐다. 2005년 북핵 해결 로드맵이 담긴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와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폐기 수순을 밟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인 2012년에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2·29 합의를 발표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면 미국이 대북 영양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불과 2개월 후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면서 합의가 유명무실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가 번복하고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등 미국이 북한과의 합의를 취소한 사례도 있다.

남북 회담에서도 북한의 합의 파기는 수시로 있었다. 북한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예정된 회담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 북한은 탈북자 단체가 휴전선 근처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자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소했다. 북한은 지난 5월에도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 선더’가 실시됐다는 이유로 고위급 회담 무기한 연기를 통보했다가 2주 만에 재개했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파기와 취소의 역사를 밟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레스센터에서 “6·15 선언이나 10·4 선언이 이행되지 않은 것은 정권이 교체됐기 때문이며 9·19 공동성명, 6·13 합의 같은 6자회담을 통한 합의와 이번 비핵화 합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이번 합의는 실무적 협상을 통한 것이 아니고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실행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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