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모두를 위한 명절



SNS 타임라인에 가짜 깁스 광고가 올라왔다. 그걸 보니 추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탐스러운 과일 사진이나 한복을 차려입은 가족의 사진이 아니라 가짜 깁스 광고를 보고서야 추석임을 실감하다니, 어쩌면 삶은 그 자체로 한편의 블랙코미디인지도 모를 일이다. 몇 년 전 가짜 깁스에 대한 얘기를 처음 접했을 땐, 이런 것까지 동원해 눈속임할 만큼 싫을 건 뭐고, 이렇게까지 싫다는데 굳이 불러모아 복닥거릴 건 또 뭔가 싶었다. 그저 먼 세상 얘기라고 생각하며 구경하듯 바라봤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비혼인 데다 우리 집은 명절에도 별다른 이벤트가 없는 집이다. 제사와 명절 차례를 성묘로 대신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정 서운하면 연휴 중 아무 날이나 모여 한 끼 정도 외식을 하거나 그마저 귀찮을 땐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게 전부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연휴를 틈타 숙제하듯 가족여행을 가지도 않는다. 가족 모두가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네 며느리 중 막내며느리이면서도 결혼 생활 내내 홀시어머니를 모셨고, 할머니 사후에도 집안 대소사 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던 엄마가 직접 나서서 복잡하고 불합리한 형식과 관계들을 말끔히 정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모든 가정의 사정이 같을 수는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가 아니면 자식 손주들 얼굴 보기 힘든 어르신도 많고, 명절과 부모님 핑계라도 없다면 안부를 주고받는 일조차 뜸할 형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명절은 어쩔 수 없이 특별한 행사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가짜 깁스까지 나타나는 현실을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을까.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불행하다면 나머지 가족들이라고 마냥 좋기만 할 순 없을 텐데, 아무도 괴롭지 않은 명절을 보내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서인지 유독 생각 많고 마음 복잡한 명절이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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