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역사를 바꾼 밀

밀로 만든 빵


서양에서는 밀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먹는다. 밀은 단백질과 미네랄, 비타민 함유량이 높아 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보다 키와 체격이 더 크다. 하지만 칼로리 자체는 밀이 쌀이나 옥수수보다 낮아 더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빵은 단백질 함량이 많다고는 하지만 정작 쌀에 비해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적은 편이라 고기와 우유 등을 함께 섭취해 아미노산을 보충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밀과 고기를 서로 바꾸기 위해 길을 만들어 먼 거리 거래를 시작했다. 이렇게 거래가 시작되어 상업과 교역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밀은 한 나라의 흥망과 전쟁 결과를 바꿔놓기도 했다. 기원전 6세기에 벌어진 ‘페르시아-스키타이 전쟁’은 청야(淸野)작전으로 유명하다. 스키타이는 페르시아 군과 하루 정도의 거리를 두고 후퇴하면서 식량이 될 만한 밀밭을 모두 불태웠고 우물도 메웠다. 그러다가 페르시아 군에 허점이 보이면 전광석화와 같이 반격을 가한 후 다시 후퇴하곤 했다.

청야전술은 고조선이나 고구려도 중국과 싸우면서 자주 써먹던 방법이다. 그들은 중국과 싸울 때 들판의 곡식을 모두 불태워 비워두고 모든 농민들이 산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잠근 채 장기전을 벌였다. 그리고 별도 병력이 적군의 후미에서 보급로를 차단했다. 식량 보급이 끊긴 중국 군사들이 굶주림에 시달려 철수하기 시작할 때, 수천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철수하는 적군을 맹공해 몰살시키곤 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 전쟁할 때도 러시아군은 곡창지대의 밀을 전부 없애는 전략이 주효해 결국 밀을 구하지 못한 프랑스군은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또 미국 남북전쟁에서는 면화를 생산하던 부유한 남부였지만 밀을 생산하던 북부에게 결국 식량문제로 패했다. 이렇게 밀은 상업 문화를 만들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등 역사를 바꾸는 힘을 가진 작물이었다.

세종대 대우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