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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흥우] SOS 친 구상나무



크리스마스 하면 산타클로스, 선물이 우선 연상된다. 이와 더불어 빠지지 않는 게 크리스마스트리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전나무가 많이 쓰이지만 구상나무만 못하다. 높이 20m 안팎, 폭 7∼8m까지 자라는데다 수형이 아름다운 덕분이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수, 구상나무의 학명은 ‘Abies koreana WILS.’이다. 학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고유종이다. 그래서 유럽에선 구상나무를 한국전나무(Korean Fir)라고 부른다.

구상나무가 세상에 알려진 건 약 100년 전쯤이다. 분비나무와 생김새가 비슷해 분비나무 일종으로 인식되어 오다 1920년 미국의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 한국 고유종으로 발표했다. 한국 고유종이어도 북한에선 볼 수 없다. 덕유산이 구상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어서다. 남한에서는 주로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무등산 등의 높이 500∼2000m 산악지대에 분포한다. 그중에서도 한라산에 가장 많이 자생하고 있다. 고산식물이어서 평지에서 키우기는 어렵다고 한다.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할 만큼 귀하디 귀한 구상나무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이상기온으로 곳곳에서 말라죽어가고 있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고사현상은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구상나무는 더위에 약하다.

녹색연합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지리산의 고산침엽수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구상나무 고사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80% 이상 말라죽은 집단서식지도 발견됐다. 최근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서 발생한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산사태 또한 구상나무 고사와 관련 있다고 한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이 땅에서 구상나무를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구상나무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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