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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남호철] 도시재생과 관광



얼마 전 유럽 북동부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에스토니아를 방문했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리는 나라다. 유럽에서 가장 ‘중세답다’는 수도 탈린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가 있다. 14∼15세기 건축물들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이끄는 곳이다. 오랜 유물들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서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유적지로 각광받고 있다.

구시가지 인근 탈린 기차역 부근에는 옛 공장 부지가 있다. 텔리스키비(Telliskivi)라는 동네로, 요즘 핫한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부가 버려진 공장을 예술가들에게 싼값에 임대해 주면서 변신하기 시작했다. 탈린 젊은이들이 작지만 창의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곳이다. 서울 성수동이나 문래동이 오버랩된다. 여러 카페와 디자인숍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홍대 거리 같은 활력도 넘친다. 오래된 흔적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낡은 것이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공장시설이 있는 지역들은 공장시설이 가동되는 동안에는 흥하지만 공장이 문을 닫고 나면 사람이 떠나고 폐허가 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사람이 떠난 지역을 예술로, 또는 창업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 천혜의 자원이 될 수도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없애지 않고 활용한 ‘서울로 7017’, 1970대 지은 석유비축탱크를 재활용해 만든 ‘문화비축기지’ 등이 꼽힌다. 무조건 허물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대신 기존의 것을 재활용해 새로운 관광자원을 만든 것이다. 서울로 7017은 초기에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개장 이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변 상권도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도시재생을 통한 관광의 중요성이 새삼 와닿는 공간이다.

문화비축기지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철거 후 개발했던 과거 공공건축과는 달리 녹슨 유류탱크가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옛것을 유지해 역사를 보전함과 동시에 관광자원이 됐다는 평가다. 주황색 화강암 옹벽을 외관에 그대로 사용했다. 자칫 삭막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거친 표면 등 날것의 느낌을 살려 독특한 외관을 만들어냈다. 낡은 창고가 보물창고로 변모한 셈이다.

거창한 유물보다 소소한 일상의 흔적들이 귀하게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도시 곳곳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숨어 있다. 100년쯤 된 것에는 100년만큼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한국에서 오래된 흔적 가운데 최근 사라지면서 아쉬움을 남기는 곳이 있다. 서울 피맛골이 대표적이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빈대떡, 해장국을 먹던 과거는 추억으로만 남았다. 건물 1층의 일부 공간을 피맛골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창신동 봉제마을, 성수동 수제화 거리 등이다. 창신동은 동대문시장 인근에 있다는 점을 살려 봉제 특화거리로 조성되고 봉제작업장에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내며 입주해 있다.

도시재생은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 왔다. 이를 통해 관광지로 각광받는 도시도 있지만 지역주민의 불편과 원성을 사는 곳도 적지 않다. 지역주민들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겉치장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생활에 불편을 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부는 7조9000억원이 투입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지 99곳을 새로 선정했다. 서울시 일부 지역도 포함됐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다. 핫플레이스를 일궈온 ‘주인공’이 떠나면서 그 장소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도시재생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공동체 형성이 필요한 이유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래된 도시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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