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어른의 유행어



요즘 “자기혐오 때문에 왔어요”라며 첫 상담을 시작하는 사람이 늘었다. ‘혐오’라는 단어는 원래 있었지만, 그 표현은 분명 요즘 더 자주 쓰이고 있다. 단순한 미움이나 싫음보다도 더 강해서 “저 자신이 싫어요”보다도 더 세게 들리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말을 쓸수록 감정이 말을 따라 깊이가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우울증은 단지 슬픈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스스로를 과도하게 비난(self-criticism)하고 끊임없이 과거를 곱씹는 생각은 우울증을 더 심하게, 오래 계속되도록 한다. 우울해지면 원인과 결과를 종종 혼동한다. 누구나 미워할 만한 존재인 바로 나 자신이 원인이고, 그래서 미움 받는 것이 당연한 결과 같지만 실은 원인과 결과가 반대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시내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세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 소문이 진짜인 것처럼 돼 버린다. 사람 사이의 말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속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살아오고 장점을 많이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비난을 세 번만 하다 보면 그게 맞는 말 같다. 남이 뭐라고 하는 것보다 ‘자기혐오’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위험하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은 하루 종일 백 번이고 실제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과 육아에 지쳐가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겹치다 보니 요즘 나도 자기비난에 시달렸다. 우울증이 오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우울증환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니까. 자신을 비난하는 생각을 억지로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 자신만 보는 SNS에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쓰고 그 단어를 읽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조금은 된다. 국민학교 시절 반공, 불조심 등 여러 가지 표어 중 ‘유행어를 쓰지 맙시다’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 아이들도 따라 하던 ‘잘돼야 될 텐데’ 또는 ‘괜찮아유’는 자기혐오에 비해 좋은 말이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참 긍정적인 단어구나.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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