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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홍관희] 北 편향 중재가 비핵화 걸림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시킨 후 잠시 궁지에 몰렸던 김정은이 평화 제스처로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대규모 핵·미사일 무력을 과시했을 9·9절 정권수립일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이지 않았고 핵 언급도 없었으며, 김영남이 행한 대리 연설에서도 유독 경제강국을 강조했다. 물론 이날 노동신문은 ‘평화 수호의 보검’으로서 핵무기 보유의 정당성을 여전히 강조했다.

이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비핵화는 의중에 없으면서도 협상을 재개하되 이를 지연시켜 미국의 제재 압박과 군사적 옵션을 예방하는 한편 미·북 핵 담판으로 종전선언·평화협정을 거치는 한반도 빅딜을 만들어낼 심산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리얼리티쇼 성격의 실적주의와 북한의 의중을 알아챈 안보 참모들의 현실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미국 정가를 강타하고 있는 밥 우드워드의 저서 ‘공포(Fear)’는 미국 역대 정부의 북핵 다루기가 얼마나 냉철하고 엄중하게 진행돼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략적 인내를 강조했던 버락 오바마 정부조차 대북 선제공격을 우선순위에 올렸었고, 트럼프 시대에 와선 김정은 참수 계획은 물론 중국을 앞세운 ‘김정은 교체’(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구상도 실재했음이 밝혀졌다.

2차 핵 담판을 앞두고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에게 기만당했다고 보는 미 정책 입안자 및 안보 전문가들의 비판적 인식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NBC방송이 북한이 올해만 5∼8개의 핵무기를 생산했다고 평가한 가운데 국무부는 비핵화가 안 될 경우 즉각 대응할 의지를 밝혔다. 재무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당일인 14일 추가 제재의 칼을 빼들어 남북 공조 과속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전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는 “미·북 정상회담이 쇼였다”고 일갈했으며,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준비 없이 정상회담을 개최해 김정은을 정당화시키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북핵의 피해 당사자인 한국은 모든 정책 역량을 비핵화에 집중해야 한다. 말로는 비핵화를 외치면서 실제 행동에 있어 김정은 정권에 도움을 주는 이중적 대응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유엔 제재 위반 논란을 일으키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 왜 그리 시급한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부랑배 세력과 이를 막아내려는 동맹 사이에서의 양비론적 중재는 더 이상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미·북 양측에 ‘대담한 결단’을 촉구한 것은 미국 측에 추가 양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쳐 선 비핵화에 입각한 한·미 공조에 충실해야 할 북핵 피해국 통수권자로서 적절치 않다.

특히 13일 청와대 원로자문단 간담회에서 자신들은 할 바를 했는데 미국이 한·미 훈련만 중단하고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아 협상이 교착되고 있다는 북한 주장을 변호하는 듯한 대통령의 언급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북한이 행한 핵·미사일 실험장 폐기는 비핵화와 무관한 보여주기식 쇼였고, 한·미 훈련 중단이야말로 우리 안보를 위해 취해선 안 될 섣부른 조치였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평가다. 이렇듯 현 정부의 오도된 북핵 인식이 비핵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북핵 정책을 놓고 한·미 간 불협화음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김정은의 이번 평화 이니셔티브는 우리 안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부 외교로 미국의 압박을 피하면서, 연내 종전선언을 관철해 한반도에 거짓 평화를 구축하고, 판문점 선언의 법제화를 통해 대남전략 핵심인 민족자주·민족경제를 공식화하여, 북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음모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18일부터 열리는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향한 국민적 여망에 문 정부가 적극 부응하기를 바란다.

홍관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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