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사랑에는 언젠가 끝나고 말 운명과 그것이 남길 상처에 대한 각성이 미리 도착해 있다. 사랑에 빠진 자는 유리잔 속에 감춰진 금들을 벌써 보고 있어서 달콤한 술에 취해 있는 순간에도 깨진 유리 위를 맨발로 걷는 상상을 쉬이 놓을 수 없다. 사랑이 고통스러운 상상을 동반하는 게 아니라 그 상상까지 포함해 사랑이라고 말해야 한다. 사랑은 그렇다. 사랑을 조여 왔던 불안이 마침내 파국을 불러왔는지 사랑이 필연적으로 맞게 될 파국이 앞서 불안을 앓게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사랑은 그 시작과 끝이 서로를 껴안고 만드는 소용돌이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생을 일순 정지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구멍을 낸다.

인생에 새겨진 사랑이, 여전히 물이지만 순간 물의 습성을 버리고 물 아닌 것이 된 소용돌이와 같다면 그 소용돌이를 에워싼 불안이 꼭 파국에만 종사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불안은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사랑의 중력’ 복판에서 여전히 흘러가는 ‘생의 관성’을 동시에 감당하는 엇갈린 예감이다. 어쩌면 사랑을 인생에 붙들어 매려는 저 불안으로 인해 우리는 ‘숙명’이라는 말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숙명이라는 말과 더불어 존재하는 사랑의 핵심적인 속성 하나를 더 끄집어낼 수 있다. 사랑이 충만한 만큼 불안을 동반한다는 것은 그것이 ‘교환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이 아니면 허망한 인생에서 사랑은 늘 불안하고 그래서 절대적이다.

만약 다른 무엇으로 바뀌어도 상관없다면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다. 교환 가능한 것들의 자리는 사실 텅 비어 있다. 우리는 가족의 추억을 간직한 집, 젊은 열정으로 꽉 찬 학교, 관계 속에서 만난 사람까지, 가급적 비싸게 교환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안도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교환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대개 일생을 떠들어도 모자란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의 아름다움을 견디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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