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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장의 ‘다름과 닮음’… 영혼을 흔들다










한국 독자들이 소설 3권을 산다면 그중 1권 정도는 일본 작품이다. 교보문고는 지난해 말 일본소설 연간 판매량이 처음으로 80만권을 넘겼고, 소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4%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소설 전성시대를 견인해온 작가는 단연 히가시노 게이고(60)와 무라카미 하루키(69)다.

일단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판매된 일본소설에서 두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자(그래픽 참조). 2009년을 비롯해 대부분 해에 두 사람의 비율을 합하면 30%를 웃돈다. 올해의 경우 40%에 가까운 상태다. 두 작가가 일본문학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은 과장이 아닌 듯하다. 최근 5년은 게이고가 더 잘 팔리고 있다. 하루키가 게이고에 비해 드문드문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구환회 인터넷교보문고 소설 마케팅디렉터(MD)는 11일 “‘경이로운 다작(多作)’이 특기인 게이고의 책은 몇 달에 한 번씩, 하루키의 책은 몇 년에 한 번씩 나온다”며 “게이고는 꾸준히 팔리는 작가고, 하루키는 출간 시의 관심도가 가장 폭발적인 작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한국 독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가 1순위로 꼽힌다. 문학평론가 장석주는 “게이고와 하루키는 한번 잡으면 중간에 멈추지 못할 정도로 흡인력 있는 스토리를 쓴다”고 평가했다. 게이고는 치밀한 추리 기법으로 긴장도를 높이고 하루키는 환상적인 서사로 몰입하게 만드는 데 최고라는 평가다. 김도훈 예스24 문학 MD는 “둘 다 이야기의 대가들이다. 누구나 책 속에 빠져들 만큼 재미있게 소설을 써내기 때문에 두터운 한국 팬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작가는 또 동시대의 감각을 잘 담아낸다. 문학평론가 강경석은 “하루키는 개인의 실존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게이고는 단순한 추리가 아니라 사회 문제를 주요 모티브로 사용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쓴다”고 분석했다.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1989·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처음 소개됐을 당시 한국 작가들은 분단과 역사, 노동이라는 거대 담론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개인의 실존과 사랑이란 문학적 주제에 목말라 있던 한국 독자들은 ‘상실의 시대’에 그야말로 열광했다. 게이고 소설에는 학교 폭력, 가족 갈등, 우울증 등이 자주 나온다.

대중성과 동시대성이 두 작가의 공통점이라면 차이는 무엇일까. 구환회 MD는 “게이고는 정교한 추리의 구조 안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담은 작품을 쓰는 반면 하루키는 감각적인 문체로 현대인의 고독과 허무의 감성에 대해 정밀하게 묘사한다”고 말했다.

100만부 이상 팔린 게이고의 대표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추리 요소를 가미한 따뜻한 이야기다. 이 작품을 포함해 ‘용의자 X의 헌신’ 등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는 200만부 이상 나갔다. 미문을 쓰는 하루키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된다.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게이고는 해마다 신작을 2∼3편씩 내고 있다. 최근 게이고의 신작 ‘살인의 문’을 낸 출판사 재인 박설림 대표는 “책을 낼 때마다 인터뷰 요청을 하지만 일절 응하지 않고 프로필 사진도 제공하지 않는다”며 “게이고는 매일 소설 쓰는 것에만 몰두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하루키는 여러 관심사를 노출하며 다양한 사회적 발언을 한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음식에도 관심이 많다. 취미로 마라톤도 한다. 각종 시상식이나 매체 기고를 통해 일본의 과거사나 영토 문제, 원자력 정책을 비판한다. 게이고에 비하면 훨씬 외향적이다.

두 사람의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스24에 따르면 하루키와 게이고의 독자는 구매력이 큰 30∼40대 여성이 각각 35.8%, 45.2%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강경석은 “한국 작가 다수는 문학적 의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독자들은 지금 우리 문학에서 찾기 힘든 재미와 사회성을 일본소설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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