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 deep] ‘기득권의 벽’ 앞에 제자리걸음 중인 문재인정부 혁신성장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우버 택시’를 접하기 힘들다. 우버 택시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승객과 기사를 연결해주는 대표적인 공유 경제 서비스다. 2013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2년 만에 일반 차량 서비스를 접었다. 택시 시장을 교란한다는 택시업계의 극심한 반발 때문이다. 현재는 고급 택시 서비스인 ‘우버 블랙’ 등 일부 서비스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답답하다. 문재인정부 경제 정책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혁신성장에 ‘걸림돌’로 꼽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서비스 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감감무소식인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 택시 서비스를 비롯해 기득권층이 공유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10일 “택시업계에선 ‘우리는 요금 인상 규제를 받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우버 택시를 허용하는 건 잘못됐다’는 논리 때문에 설득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정부의 혁신성장 추진이 ‘기득권의 벽’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상대적으로 반발이 적은 생활밀착형 규제와 달리 산업 구조를 바꿀 만한 규제일수록 규제 개선 추진이 더딘 상황이다.

국민일보가 10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을 통해 정부의 ‘2018년도 규제 개선 항목’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기재부는 올해 13건의 규제 개혁 과제를 내세웠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인 6건을 상반기에 완료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서비스산업 혁신을 위한 규제 개선’은 12월로 완료 시점을 늦췄다. 그나마도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통신산업 진입 규제 개선도 지지부진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8월 공청회와 입법예고까지 마쳤지만 ‘보편요금제’가 발목을 잡았다. 보편요금제란 2만원대의 저렴한 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출시하도록 한 제도다.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 과제의 하나인 ‘통신요금 인하’를 위한 추진 항목이다.

하지만 알뜰폰 사업자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관련 법안 통과가 요원해졌다. 저렴한 가격의 요금제가 출시되면 시장 경쟁력을 잃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현재 국회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언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의 경우 16개 규제 개혁 과제 가운데 2건을 완료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5G 조기구축 지원, 연구개발특구 내 건축행위 규제 완화 등 상대적으로 개선이 용이한 건이었다. 공인인증서 제도 폐지나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굵직한 과제는 연내 완료될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득권 때문에 아예 과제로 올리지도 못한 규제 개혁 사례도 있다. 원격 진료가 대표적이다. 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지만 한국에서만 유독 지지부진하다. 6건의 진료 중 1건은 원격진료일 정도로 보편화한 미국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새로운 의료 기술 발전에도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국내 의료계 사정과 연관이 깊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조건부로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곧바로 원격으로 이뤄지는 모든 진료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전자 치료와 같은 경우 국내에서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연구가 더디다. 복지부 관계자는 “황우석 사태 이후 부정적 인식이 생긴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기재부 혁신성장본부는 지난 7월부터 이날까지 10차례에 걸쳐 현장 규제 개선에 나섰다.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도 지난 6월 첫 회의 이후 5차례나 개최했다. 하지만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공언한 ‘결과물’은 아직 가시권에도 들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기득권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이런 부분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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