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NA를 되살리자] “바리스타도 어린이들의 꿈이 되는 사회 만들고 싶다”

제14대 스타벅스 커피대사로 선정된 김경빈씨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스타벅스코리아 본사에서 드립커피 추출기구인 ‘케맥스’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김씨가 분쇄된 원두를 시향하고 있는 모습. 최현규 기자


부모는 정장 대신 앞치마를 두른 아들이 못내 아쉬웠다. 졸업식 날 지도교수는 “다른 일자리 소개해 줄 테니 당장 그만둬”라고 말했다. 친구들도 그의 선택을 의아해 했다. 김경빈(28)씨는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월 6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역대 최연소 ‘스타벅스 커피대사’가 됐다. 스타벅스 입사 3년 만에 1만3000여명의 바리스타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바리스타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주변 사람들 반응이 어땠나요?”라고 묻자 “부모님은 제 얼굴이 나온 기사들을 스크랩하느라 바쁘셨고 교수님도 무척 좋아하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공대생 바리스타 되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스타벅스코리아 본사에서 김씨를 만났다. “공대 출신 바리스타는 많이 없을 걸요?” 김씨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는 수도권의 한 대학교에서 전기전자제어학을 전공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성격도 활발한 탓에 학과 회장과 랩실(연구실) 회장을 맡았다. 4.5만점에 4.0 가까운 성적을 받고 졸업할 만큼 학업에도 소질이 있었다. 김씨는 “대학 3, 4학년 때는 랩실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살았어요. 교내 대회에 참가해 상도 받았고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잘나가던’ 공대생이 왜 바리스타가 됐을까. 혼자 진득하게 앉아 연구하는 것보다는 활동적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적성에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했다고 한다. 랩실과 기숙사를 오갈수록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고도 했다.

진로 고민으로 답답하던 차에 학교 근처 스타벅스 매장을 우연히 들른 것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커피를 주문하며 매장 직원과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인데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이런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상대하는 일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고 공대생이 가진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김씨는 “바리스타가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모든 과정이 과학”이라며 “과학은 제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2014년 말 스타벅스 매장관리직 채용공고가 올라온 것을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

커피에 미치다

이듬해 서울 서대문구 연세종합관점 부점장으로 바리스타 생활을 시작했다. 일은 재밌었지만 커피 관련 지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지금이야 커피 이론을 막힘없이 설명하고 칼럼도 격주로 쓸 정도의 수준이지만 그때만 해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퇴근 후 커피 학원을 다니는 것은 물론 직접 주말 커피 스터디도 만들어 진행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4∼5시간밖에 안 됐다. 다시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노력은 결과로 드러났다. 미국커피품질협회(CQI)에서 공인하는 커피 품질 감별사 자격증인 ‘큐그레이더(Q-Grader)’와 커피 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커피에 단단히 미쳤었던 것 같다”고 말하자 김씨는 “시중에 나온 커피 관련 책은 거의 다 읽었을 거예요”라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직업 특성상 서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데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은 것이다. 분 단위로 통증이 와 계속 서 있기 힘들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좋겠다”는 부모님 말에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다. 하지만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달간 회사와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치료했다. 김씨는 “매장 동료들이 배려해주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라고 회상했다.

몸이 회복되자 특유의 도전정신이 다시 발동했다. 전국 스타벅스 바리스타 6700여명이 창작 음료 개발과 라테 아트 등을 놓고 경합을 펼치는 ‘스타벅스 커피대사 선발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베트남산 원두로 도전하다

베트남산 커피 원두를 최종 경합 때 쓰겠다고 말하자 동료들로부터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본선에 오른 최종 5명의 후보 중 베트남산 커피 원두를 사용한 것은 김씨 혼자였다. 베트남 달랏 지방에서 생산한 아라비카종 원두를 썼다는 그는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 원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로부스타종에 대한 인식이 커피 전문가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쓴맛이 강해 신맛과 단맛 등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단점이었다.

“예선도 아니고 본선인데 무모했던 것 아니냐”는 물음에 김씨는 “제가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베트남산 원두로도 충분히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베트남은 아라비카종 원두 재배를 늘리는 등 커피 원두 맛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본선에 선보일 메뉴를 개발하는 데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출근 때마다 매장 동료들에게 시음을 부탁했다. 김씨는 “동료들로부터 ‘그만 먹고 싶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집요했고 커피를 향한 집념이 대단했다.

그는 차가운 물에서 14시간 가까이 추출한 원두커피인 콜드브루에 우유를 더하고 다시 얼린 콜드브루를 띄운 ‘프로즌 콜드브루 마키아또’를 선보여 1등을 차지했다. 김씨는 “사실 도전하고도 ‘원두 때문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고민을 했어요”라며 “1등이란 소리를 듣고 믿을 수 없어서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바리스타에 대한 편견을 바꾸다

꿈을 물었다. 그는 “바리스타도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커피를 찾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약 11조74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연간 커피 소비량만 265억잔으로 국민 1명당 커피 512잔을 마신 셈이다. ‘한국은 커피공화국’이라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그는 “보통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지는 않잖아요”라고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러면서 “이 친구들이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부모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거예요”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꿈을 이루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며 “이 기사를 읽은 어린 친구들이 저를 본보기로 삼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덧붙였다.

연일 계속되는 더위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커피 추천도 잊지 않았다. 동아프리카의 고품질 원두인 말라위 세이블팜을 푸어 오버방식(pour over)으로 만든 드립커피인 ‘말라위 세이블팜 푸어오버’를 추천했다. 김씨는 “3년 전 한국에 처음으로 출시한 뒤 올해로 세 번째 선보이는 원두”라며 “산미가 강하지 않고 밀크초콜릿 같은 풍미와 전체적인 균형감이 좋아 아이스로 마셔도 좋은 커피”라고 설명했다. 말라위 세이블팜 푸어오버는 스타벅스 프리미엄 매장인 리저브에서만 만나 볼 수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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