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라동철] 덕유산 선글라스



등산 애호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3대 종주코스가 있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천왕봉∼대원사), 설악산 서북종주(남교리·장수대분소∼대청봉∼소공원·오색), 덕유산 육구종주(육십령∼향적봉∼구천동)다. 10여일 전 그중 하나인 육구종주를 1박2일 단독 산행으로 다녀왔다.

첫날은 종일 비가 내렸지만 둘째 날은 화창해 덕유산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원추리꽃이 만개한 덕유평전을 지나 오른 중봉에서 마주한 경관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서봉∼남덕유산∼삿갓봉∼무룡산∼백암봉으로 이어지는 덕유산의 등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운해 너머로 천왕봉과 반야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지리산도 보였다. 설천봉, 칠봉을 거쳐 인월담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뿌듯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찜찜했다. 선글라스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햇살이 눈이 부실 정도여서 어디선가 흘렸을 선글라스 생각이 간절했다. 언뜻언뜻 자책이 밀려왔고 서울행 버스에 올라서도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온 이튿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화가 걸려왔는데 안경점 주인이라며 덕유산에서 선글라스를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누군가가 주워 케이스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했고 안경점 주인은 비슷한 유형의 선글라스를 사간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마침 습득자의 집이 내 직장 인근에 있어 다음 날 출근길에 찾아가 선글라스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습득자는 그날 새벽 삿갓재대피소에서 나보다 1시간가량 늦게 출발해 800m쯤을 걸어오다 발견했다며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선글라스를 되찾은 것도 좋았지만 그의 마음 씀씀이에 기분이 더 유쾌해졌다. 나의 첫 육구종주가 완전한 해피엔딩이 되는 순간이었다. 인심이 메마른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가끔 누군가의 배려로 망외의 기쁨을 얻기도 한다. 이번에는 내가 수혜자였다.

라동철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