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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무사 ‘계엄령 문건’ 원본 파기했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원본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기무사는 지난해 3월 초 이 문건을 상부에 보고한 뒤 파기했으며, 컴퓨터 파일 형태로만 USB 장치에 보존해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문건 파기 경위와 보존 과정에서의 증거인멸 여부를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기무사는 지난해 2월 말부터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만들어 그 다음 달 초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군 관계자는 17일 “한 전 장관은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으로부터 문건 보고를 받은 뒤 ‘존안(存案)해 놓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후 문건 원본이 파기된 뒤 이 파일이 USB에 담겨 보관됐다. 원본 파기 및 USB 저장 시점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당초 기무사가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1부밖에 없는 원본 문건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기무사 내부에 문건 파일을 담은 USB가 남아 있고 송 장관에게 전달된 것도 USB 파일을 프린트한 버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원본 파기를 누가 지시했는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기무사는 문건을 보존해 놓으라는 한 전 장관의 지시를 듣고 파일 형태로만 이 자료를 USB 장치에 저장해 놨다는 게 당시 기무사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기무사 자체 서버에 별도로 이 파일을 저장해 놓지 않고 USB에만 파일을 넣어 보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참고한 자료들 역시 대부분 파기된 것으로 조사됐다. 기무사 일부 요원은 “계엄 선포에 대한 법적, 절차적 검토는 앞으로 계속 기무사가 맡게 될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문건 관련 자료를 상당수 파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원본이 파일로 저장되는 과정에서 원본의 민감한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했는지를 수사할 계획이다. 만약 원본이 위·변조돼 저장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 문건 파문이 터진 직후 원본을 파기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이나 말맞추기 정황이 확인될 경우 이에 가담한 기무사 요원에 대한 구속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문건 작성에 관여한 기무사 요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석구 현 기무사령관은 지난 3월 16일 표지를 포함해 A4용지 10장 분량의 기무사 문건을 송 장관에게 보고했다. 당시 송 장관은 “(문건을) 놓고 가라”고 지시한 뒤 4월 30일 청와대에 관련 보고를 간략하게 올렸다. 문건 표지에 적혀 있는 보고 날짜는 불분명하다. ‘2017. 3.’이라고만 돼 있다. 결재란과 문서번호가 없으며 비밀문서로 분류돼 있지도 않다. 기무사 관계자는 “법률 검토만 진행한 참고자료이기 때문에 결재란 등이 없다”며 “정식 문건이 아니기 때문에 파일 형태로 보존됐으며 원본과 다르지 않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해명했다.

특별수사단은 당시 문건 작성 과정에서 기무사와 다른 부대 간 협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수사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기무사는 합참의 계엄 시행계획 문건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등을 통해 작성된 위수령 검토 문서 등을 토대로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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