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 밀알에서 기적으로] 일곱 청년이 뿌린 ‘밀알’… 장애인 복지 사역 ‘거목’으로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영업팀 김영학씨(지적장애 2급)가 매장에서 상품을 정리하며 활짝 웃고 있다. 굿윌스토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증품 매장으로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장애통합보육시설인 서울 중랑구 면일어린이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1980년 7월 밀알선교단 사무실 봉헌예배 모습. 밀알복지재단 제공
 
79년 10월 한국밀알선교단 창립 당시 모습. 밀알복지재단 제공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기관들이 핵심 가치로 새길 만한 성경구절이다. 주요 활동이 복지 구제 봉사 등 섬김과 나눔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비영리조직(NPO·Non Profit Organization)이라면 더욱 그렇다. 조직의 존재 목적 중 ‘이윤 추구’를 배제하고 헌신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사회가 지향할 가치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NPO 가운데 그 이름에서부터 성경 속 ‘밀알 정신’을 표방하는 곳이 있다.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이다. 기관의 대표 이미지를 전하는 CI(Corporate Identity)는 땅에 떨어진 밀알이 싹을 틔우는 모양이고 둥근 씨앗 모양은 휠체어 바퀴를 상징한다. 장애인 복지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돼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밀알선교단’ 시작은 미약했지만…

밀알복지재단이 태동한 것은 1979년 10월 16일이었다. 총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도실명자 이재서(세계밀알연합회 총재)와 학생들, 20대 직장인 등 청년 7명이 ‘장애인을 위한 전도·봉사·계몽’을 목표로 ‘한국밀알선교단’을 발족하면서 장애인 선교와 복지운동의 막이 열렸다. 미약한 시작이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허름한 쌀집 2층 공간에 칸을 막아 만든 사무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5만원, 그마저도 50만원의 부채를 안고 첫발을 내디뎠다.

‘장애인 복지’란 용어 자체가 생경하던 시절, 단원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총신대에 ‘밀알 동아리’를 개설했다. 서울대 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대학은 물론 전남대 등 지방대학까지 빠르게 활동이 확산되며 각 지역 지도자들을 길러내는 산실이 됐다.

밀알복지재단의 설립을 이끈 두 천사

밀알선교단의 정체성은 장애인 ‘선교기관’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사업을 하면서도 종교단체라는 이유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일반 복지단체와 달리 정부의 정책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고 재정적 지원이나 후원금에 대한 세제혜택도 없었다. 장애인들에게 수준 높은 복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선 복지법인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선교단은 1991년 12월 사회복지법인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모금기간 1년 동안 목표액은 10억원.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모금기간을 3개월 연장했지만 결국 8300여만원을 모금하는 데 그쳤다.

재단 설립 포기 여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재단 설립에 사용하라며 거액의 재산을 내놓은 기부자가 등장한 것이다. 민병완 목사와 윤영곤 선교사였다. 당시 미국에서 신학박사 과정에 있던 민 목사는 한국에 남겨둔 재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기도 중에 손봉호(서울대) 교수의 강의를 듣고 결심이 섰다. 장애인을 위한 헌신과 봉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사랑의 실천이라는 손 교수의 강의에 마음이 움직였다. 때마침 선교단이 사회복지법인 설립을 위해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민 목사는 평생 모은 재산과 다름없는 건물 등기권리증을 전달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홍정길 목사가 시무하던 남서울교회에 출석하던 윤영곤 선교사는 경기도 안성 시내에 위치한 피부과 병원 의사였다. 고난주간 특강을 맡아 남서울교회를 찾은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가 예배당 입구에 놓고 간 밀알선교단의 소식지가 그의 눈에 띄었다. 소식지를 읽어보던 눈길이 절절한 심정이 담긴 손 교수의 호소문 위에 멈췄다. 밀알선교단이 장애인 복지센터와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10억원을 모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윤 선교사는 고난주간 내내 과거 매입해뒀던 토지 기부를 놓고 기도했고 부활주일을 맞아 약속을 실천했다. 1993년 7월 15일 선교단은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했다.

재단 설립 후 25년. 밀알복지재단은 ‘꿈의 복지’라 불리는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복지 서비스의 대부분을 이뤘고 지금도 이뤄가고 있다. 밀알은 말한다. “사람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것을 지향하는 ‘진정성’이 하나님이 이루실 계획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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