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 밀알에서 기적으로] “청년 시절 장애인 통해 삶을 배우고 용기 얻어”



“아버지 사업은 부도가 났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어요. 군에서 제대하던 날, 돌아갈 집이 없었습니다. 슬프고 막막했죠. 하지만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저의 청년 시절은 그들을 통해 삶을 배우며 위로와 용기를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정형석(61·사진)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는 36년 전 대학 복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지난 5일 만난 정 대표는 고통받는 장애인을 도우며 20대를 채운 인물이다. ‘밀알’과의 인연이 시작된 건 1980년 가을.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 밀알선교단 단원이었던 친구를 따라 사무실에 들렀다가 이재서 단장을 만나면서부터다.

이후 밀알선교단 회원에게 발송되는 소식지 ‘밀알보’가 부대로 발송됐고 당시 군종병이었던 청년 정형석은 소식지를 읽으며 장애인사역의 비전과 사명을 마음에 새겼다. 군복무를 마친 정 대표는 자연스럽게 밀알선교단과 총신대 밀알동아리에 가입했고 장애인복지시설 토요전도활동 등 선교 및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매년 여름 전국에 있는 장애인을 초청해 캠프를 열었습니다. 많을 땐 참가자가 1000명이 넘기도 했었지요. ‘세상에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애인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서로의 삶을 꺼내 놓으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이 겪는 아픔이 가슴속 깊이 이해되더군요. 대부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와 형제 혹은 자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었어요. 힘겹게 생활하면서 소외되고 차별당하는 그들에 비하면 나는 가난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불편할 것 없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 이 단장의 제안으로 선교단 총무직을 맡은 정 대표는 이후 이 단장이 장애인사역의 비전을 품고 유학을 떠나면서 밀알선교단의 실질적인 리더가 됐다.

40년 가까이 밀알복지재단과 함께해 온 정 대표는 “경제상황 등 현실적 문제가 많았지만 지금까지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던 핵심은 진정성이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땅에 떨어진 밀알이라 믿고 싹틔울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던 내 모습에서 하나님이 진정성을 보신 것이라 믿는다”면서 “밀알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활동에 장애인을 향한 사랑이 담기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글·사진=최기영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