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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지방대생의 ‘낮은 꿈’, 9급 공무원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촌 한 건물 계단으로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다. 신간 ‘복학왕의 사회학’은 지방대생들이 가족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하급 공무원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접근한다. 국민일보DB




“9급 공무원이 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닌가?” 사회학자 최종렬(53)이 낸 신간 ‘복학왕의 사회학’의 문제의식이다. 2005년부터 대구 계명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가 지난해 초 발표했던 동명의 논문을 확대 연구했다. 부제는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다. 제목 중 ‘복학왕’은 지방대생의 모습을 그린 웹툰에서 따왔다.

저자는 대구·경북 지역 2∼3위권 대학 재학생 6명, 졸업생 17명, 학부모 6명을 심층 면접했다. 이들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좋은 삶을 추구하는가’ ‘좋은 삶을 위해 무엇을 실천하는가’를 물었다. 이를 통해 지방대생들이 ‘가족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위해 9급 공무원 등 낮은 수준의 사회적 목표를 세운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응답자 중 3명은 대학 3학년이 되자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1년 6개월씩 휴학한 뒤 실패하고 복학한다. 졸업 후에 다시 도전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공무원은 안정적이고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말한 다른 학생은 시도조차 않는다. 그는 “공부를 싫어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이 추구하는 가족의 행복이 지방대생이 꿈꿀 수 있는 최대의 가치라는 점에서 패배주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지방대생들이 대학 입시 등 경쟁에서 낙오했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방대생은 스스로를 공부 안 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삶을 영원히 경쟁 밖에 둔 채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삶의 습속을 유지하며 적당히 평범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그저 자식들이 “공무원이나 걸려” 편안하게 살길 바란다.

그는 지방대생 부모와 자녀 세대가 둘 다 가족 안에 삶의 경계와 목표를 가두는 것은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본다. 저자는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는 세대 간의 유대 때문에 ‘가족의 행복’이라는 가치가 유전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면 이 유대는 깨지고 지방대생은 실업자로 내몰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지방에 좋은 일자리 창출을 제시한다. 나아가 대학을 종합 생활공간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스스로 확장된 미적 체험을 열망하며 가족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연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들이 신자유주의에 매몰돼 자기계발에만 힘쓰는 속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 의아함을 품고 시작됐다고 한다. 자신이 지켜본 지방대생은 적극적인 자기계발이 아닌 소극적인 자기보존에 급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지방대생들의 자기이해를 사회학적으로 탐구한 보고서라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모든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이 수도권에 집중된 ‘서울공화국’을 돌아보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지방대생들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나 경쟁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행복을 꿈꾸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이 목표가 저자의 말대로 패배주의의 발로라면 왜 지방대 졸업장이 수많은 청년에게 열패감을 안겨주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지 않을까. 학계에서는 그 원인이 공고한 대학 서열과 이 서열에 따른 편견과 차별이라고 지목해왔다. 이를 도외시한 채 지방대생들이 방어적으로 채택한 가치인 가족의 행복을 비판하는 것은 사회 문제를 개인의 과제로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또 대학을 ‘미적 폴리스’로 만들어 학생들이 더 큰 꿈을 꾸게 해야 한다는 결론은 이상적일 뿐만 아니라 편향돼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모든 청년이 글로벌 리더나 사회운동가를 꿈꾸는 사회도 건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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