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월드

미국 vs 중국, ‘파워 게임’에 지축이 흔들린다



남중국해는 물류 핵심·자원의 보고… 양측 군사적 충돌 가능성 가장 높아
中, 최근 인도양으로 세력 확장 시도… 美, 日·인도 등과 함께 中 견제 나서
美·中, 카리브해·아프리카서도 대립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한창이다. 양국은 지난 6일 1차 340억 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상대국 수입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물리는 ‘치킨 게임’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득실만 따지는 싸움이 아니다. 기존 세계 질서의 패권자인 미국이 급속히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 중국의 기세를 꺾어놓으려는 전쟁의 신호탄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성공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자 미국이 견제하는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양국 간에 총성 없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도 버금가는 충돌 양상을 빚고 있다. 미·중 양국이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필연적으로 무력 충돌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남중국해는 미·중 갈등의 화약고

미국과 중국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은 남중국해다. 남중국해는 서태평양과 인도양, 중동을 연결하는 해상 물류의 핵심 지역이다. 전 세계 해양 물류의 약 25%, 원유 수송량의 70%가 이곳을 지난다. 액수로는 한 해 3조4000억 달러(약 3782조원) 규모다. 남중국해는 자원과 해양 생태계의 보고다. 남중국해의 석유매장량은 최소 110억 배럴, 천연가스는 190조 큐빅비트로 추정되지만 이보다 몇 배나 된다는 추정치도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해역의 90%를 차지하는 남해 구단선을 기준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중국은 남중국해 인공섬들에 활주로와 항공기 격납고 등을 구축하고 지대공미사일과 발사 차량, 레이더 등을 배치하며 군사기지화하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은 중국의 기세에 눌려 있다.

대신 미국이 중국을 향해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최근 전략폭격기 B-52 편대를 남중국해 일대에 잇따라 전개하고 구축함을 동원해 남중국해 인공섬 부근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쳤다. 프랑스와 영국도 항행의 자유 작전에 가세해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 기도에 맞서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남중국해 군사화를 이유로 림팩(환태평양연합군사훈련)에서 중국을 배제했고, 미군 수뇌부는 남중국해 인공섬 폭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경고하고 나섰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는 이웃 국가를 겁주고 협박하려는 의도”라고 강력 비난했다. 미·중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1순위로 남중국해가 꼽힌다.

중국·인도 ‘인도양’ 쟁탈전, 미국 가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후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올인하며 인도양에서 인도와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인도양의 스리랑카 함반토타항구 운영권을 확보했다. 스리랑카는 2010년 함반토타항구를 건설했으나 적자가 쌓이자 항구 지분 85%를 중국에 넘겼다. 중국은 파키스탄 남부 과다르항을 43년간 장기 임차하는 계약도 맺었다. 올해 초 섬나라 몰디브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11척의 함정을 인도양에 파견해 인도를 견제했다. 장기간 인도 영향권에 있었던 몰디브는 2012년 압둘라 야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친중국 노선으로 기울었다. 몰디브는 대외 부채 중 중국 채권이 70%에 이를 만큼 대중 종속이 심하다. 중국이 몰디브에 군사기지를 세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프리카 동부의 소국 지부티에는 지난해 7월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가 세워졌다. 중국이 미얀마 시트웨항과 함반토타항, 과다르항에 이어 아프리카 케냐의 라무항 등으로 이어지는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인도의 숨통을 조이는 모양새다.

중국의 세력 확장에 인도는 다급해졌다. 인도는 올해 초 아프리카 동쪽 섬나라 세이셸에 해군기지와 활주로 건설 등 군사기지를 세우기로 했고, 이란 남동부의 차바하르항 운영권 임차 협약도 맺었다. 미국도 가세했다. 미군 태평양사령부는 지난 5월 명칭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변경했다. 지난해 말에는 동북아와 호주, 인도에 이르는 지역을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바꿨다. 일본 인도 등과 함께 중국을 포위해 세력 확장을 막겠다는 것이다. 인도-일본-하와이-호주를 잇는 미국의 ‘다이아몬드’ 전략과 중국의 진주목걸이가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턱밑 ‘카리브해’ ‘태평양’도 중국 자본 침투

중국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인구 10만 명이 조금 넘는 섬나라 그레나다에 수조원을 쏟아붓는 철도 항만 공항 건설 프로젝트 제안서를 지난해 제출했다. 파나마 운하 동쪽의 마르가리타 컨테이너항 개발에 10억 달러(약 1조825억원)를 투자키로 했다. 파나마에는 수십조원 규모의 중국 기업투자와 정부 차관이 제공됐다. 인근 니카라과에선 파나마 운하보다 큰 대운하 공사가 중국 주도로 진행 중이다. 2020년 완공된다. 자메이카와 바베이도스와 가이아나 등도 중국 자본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은 태평양 섬 국가들에도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 피지, 티모르, 바누아투 등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가난한 나라들은 채무를 갚지 못하면 기반시설이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 중국은 인구 800만 명의 파푸아뉴기니를 태평양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아 인프라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 자본은 피지, 티모르, 사모아, 바누아투 등 20여 개 섬나라에도 침투했다. 미국은 중국이 태평양 지역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은 군사적 목적 등 전략적 의도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이미 중국 손아귀에

렉스 틸러슨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월 아프리카 방문 전 연설에서 “중국 정부가 아프리카 각국을 빚의 수렁으로 빠뜨리는 불투명한 계약과 약탈적 대출 관행, 부패한 거래 등으로 옭아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질주를 막기에는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지원과 투자 공세로 미국의 영향력을 뛰어넘었다. 2016년 중국의 아프리카 수출액은 800억 달러(약 89조원) 규모로 이미 미국의 4배에 달했다. 중국은 2020년 이전까지 아프리카에 600억 달러(약 67조원) 규모의 차관과 수출신용 등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아프리카사령부의 토머스 발트하우저 사령관은 미국 의회에서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쇼핑몰, 축구장 등 시설을 짓고 있다”면서 미국도 이런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원조 예산을 대폭 삭감해 대규모 원조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