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치 시대] 아슬아슬 지구촌… 대중 불만 이용한 정치세력 활개



이탈리아 오성운동·극우동맹당 연정 “재정위기 EU 탓” 재정확대책 만지작
EU 28개국 중 22곳 포퓰리즘당 약진… ‘통제 안되는 민주주의’로 후퇴 가능성


생활정치의 전면 등장은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현대정치의 최신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생활정치가 대중의 정서에만 호흡하는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실제로 서구에선 이미 포퓰리즘 정권이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지난달 1일 이탈리아 로마에선 ‘탈(脫)유럽연합(EU)’을 내세운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모비멘토 친퀘 스텔레)이 반(反)이민 극우동맹당과 연합정권을 구성했다. 서구 사상 좌파 지향 정당과 극우 정당이 연정을 구성한 사례는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몇 해 전만 해도 엄청난 재정 지출로 국가재정 파산 상태를 목전에 뒀던 나라다. EU에 수백억 유로의 빚을 지고 이를 갚지 못해 허덕이던 이 나라가 다시 재정 확대로 나갈 경우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오성운동·극우동맹당 연정은 국민들의 ‘재정 위기와 일자리 축소는 전부 EU와 이민자들 때문’이란 정서를 이용해 재정확대 정책을 밀어붙일 요량이다.

같은 날 스페인 사회당도 제3당인 극좌 포퓰리즘 정당 포데모스의 도움으로 집권 국민당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고 집권했다. 동유럽 슬로베니아 총선에서도 ‘슬로베니아 퍼스트’를 외치는 극우 정당이 1위를 차지했다. 체코의 지난해 10월 총선과 1월 대선, 헝가리의 4월 총선 승자도 모두 포퓰리즘 극우 정당이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EU 28개 회원국의 각종 선거에서 자국 우선주의와 반이민을 표방한 포퓰리즘 정당이 약진하거나 승리했다. 무려 22개국에서다. 이들이 집권한 나라가 5개국이고, 포퓰리즘 정당이 연정에 참여한 경우도 16개국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EU 내 포퓰리즘 지지도는 8.5%(2000년)에서 지난해 24.1%로 17년 만에 두 배 반을 넘어섰다.

이 사이 유럽 국가들이 너도나도 가입하기 위해 혈안이 됐던 EU는 어느새 ‘탈퇴하는 게 더 나은 허울 좋은 국가연합’으로 변해 버렸다.

미국에서도 포퓰리즘 경향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포퓰리즘 정치세력의 영원한 테마인 자국 우선주의를 그대로 대변하는 정책 기조다.

경제 상황 악화와 사회적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 등 부정적 사회 현상의 불만이 대중 사이에 팽배해지자 이를 이용하는 정치세력이 활개치는 셈이다. 하나같이 정치 엘리트를 배격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거나 대중 최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도 큰 골칫덩이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탄생한 생활정치가 자칫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한 정치학자는 “민주주의란 정당과 유권자의 끊임없는 상호 소통”이라며 “정치세력이든, 유권자든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을 통제한다면 민주주의의 원칙은 되레 파괴될 뿐”이라고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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