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건강

[And 건강] 年 4만4000여명 신규 발생… 서러운 희소암 환자들




 
어깨 관절 부위에 발생한 골육종(위)과 연부조직 육종(가운데), 안쪽 허벅지에 생긴 지방 육종. 일반 암과 달리 육종은 뼈 연골 근육 신경 등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국립암센터 제공
 
연부조직 육종 환자가 인터넷포털사이트에서 질병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희소암은 환자 수가 적어 환자가 관련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발견 어렵고 표준 치료법 정립 안돼 생존율, 일반 암보다 8.2P% 낮아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도 ‘돈 되는’ 5대암이나 7대암에 집중
美·유럽, 임상연구·프로젝트 운영… 한국은 하반기에 연구 진행키로


경기도 파주에 사는 장모(73·여)씨는 지난 5월 심장 근육에 암이 생긴 ‘연부조직 육종’ 진단을 받았다. 암 덩어리는 10㎝나 됐고 그에 따른 염증으로 폐에 물이 찼다. 아들은 “암 이름도 처음 들어봤지만 심장 쪽에 암이 생긴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흉부X선, 심장 컴퓨터단층촬영(CT), 심장초음파 검사 등을 모두 받아왔지만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1년여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국립암센터에 와서야 정확한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장씨의 주치의인 윤탁 국립암센터 희귀암클리닉 전문의는 9일 “연부조직 육종은 우리나라에서 매년 1000명 정도 발생하는 희소암으로 진단과 치료가 쉽지 않다”고 했다.

장씨의 경우 암이 크고 심장 근처에 있어 수술이 불가능했다. 우선 폐에 찬 물을 빼고 곧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1970, 80년대 개발된 항암제가 대부분이었던 연부조직 육종에 최근 40년 만에 새로운 표적 항암제(라트루보)가 개발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장씨에게 행운이었다. 지난해 초 국내에 들어온 이 항암제는 올해 2월부터 1차 치료에서 기존 항암제(독소루비신)와 함께 사용할 때 건강보험이 적용돼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됐다. 장씨는 지금까지 기존 항암제 2번, 새 항암제로 4번 치료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검사에서 암이 오히려 1㎝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나 의료진을 당황케 했다. 윤 전문의는 “암이 커졌다면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 “40년 만에 나온 새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면 쓸 수 있는 약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희소암은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장씨의 아들은 “새 항암제를 썼는데도 암이 커지니까 어머니의 사기가 많이 꺾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환자 수가 극히 적은 희소암은 흔하게 발생하는 ‘호발암’에 비해 여러 면에서 소외돼 있다.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은 이른바 ‘돈이 되는’ 5대암(위·간·대장·유방·자궁경부암)이나 7대암(5대암+폐·갑상샘암)에 집중되고 정부의 정책 혜택 역시 환자 수가 많은 암들이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희소암에 효과적인 항암제 개발 속도가 더딘 데다 수십년 만에 신약이 나와도 사용하기까지는 제약이 적지 않다. 희소암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고 전문가를 찾기가 힘들어 적절한 시기에 진단받기도 만만치 않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이 흔한 암에 비해 더 클 수밖에 없다. 희소암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최근 커지고 있는 이유다.

국내 희소암 발생 규모 첫 공개

국제적으로 희소암의 통일된 정의와 기준은 없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표준 치료 가이드라인도 확립돼 있지 않다. 다만 희소암 연구가 활발한 유럽 기준을 준용해 1년에 10만명당 5명 이하(혹은 6명 미만)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기준(5000만명)으로 따져 보면 발생자가 연간 약 2500명 이하인 암이 해당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국립암연구소(NCI) 주도하에 650여개 다국적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연구그룹(SWOG)을 만들어 희소암 환자 대상 임상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유럽도 24개국이 참여하는 ‘희소암 치료(Rarecare)’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희소암 연구는 갓 걸음마를 뗐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가 연부조직 육종 환자 대상 면역항암제와 일반 항암제 병용 치료 효과에 대한 임상연구를 하반기에 계획하고 있는 정도다.

이와 별도로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는 2016년부터 희소암 발생 및 생존율, 환자 부담 통계지표 산출 연구를 시작했다. 치료 의사와 연구자들에게 국내에는 전무한 희소암 치료 전략 개발을 위한 근거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국립암센터 연구진은 지난달 중순 열린 대한암학회 학술대회 및 국제암콘퍼런스에서 중간 연구결과를 포스트(post) 논문으로 발표했다. 국내 희소암 발생 규모와 치료 현황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1999∼2015년 등록된 암 환자 281만여명과 1993∼2015년 암 생존자 295만여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희소암의 발생률과 상대 생존율 등을 산출했다.

그 결과 연간 256종, 4만4727명의 희소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매년 발생하는 모든 암의 27%가 희소암에 해당됐다. 발생 부위별로는 소화기(23%) 혈액(17%) 비뇨생식기(14%) 여성생식기(11%) 머리·목(8%) 호흡기(6%) 등 순으로 많았다.

희소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54.9%로 일반 암(63.1%)보다 훨씬 낮았다. 진단 자체가 어려워 발견이 늦는 데다 표준 치료법 또한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립암센터 원영주 중앙암등록사업부장은 “중간 연구결과여서 산출된 수치에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국내 희소암 규모에 대한 그림을 처음 그려봤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면서 “최종 연구결과는 올해 말 복지부가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육종·희귀암센터 안진희 교수는 “최근에는 분자생물학적 분석 기법의 발달로 유방암 폐암 같은 흔한 암종에서 매우 드문 아형(아류)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흔한 암의 희소 아형으로 희소암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도 잘 모르는 암

암은 머리카락을 제외한 인체 어디에서나 생길 수 있다. 희소암의 대표격인 육종(Sarcoma)은 위 대장 폐 간 등 내장기관에 발생하는 일반 암(Cancer)과 달리 뼈 연골 근육 인대 혈관 신경 지방 등 몸 속 결합조직(근골격계)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크게 뼈·연골에 발생한 골육종과 그 외 결합조직에 발생하는 연부조직(Soft tissue) 육종으로 나뉜다. 연부조직 육종은 환자 수가 적고 진단이 쉽지 않아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암’으로 불린다. 중앙암등록본부가 매년 발표하는 공식 암 통계에도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국민일보가 국립암센터에 별도 의뢰해 분석했더니 2015년 신규 발생 암 환자 21만4701명 가운데 연부조직 육종은 1175명, 골육종은 534명이었다.

일반 암은 항암 치료와 조기 진단·수술법의 발전으로 생존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육종은 항암 치료법의 발전이 더딘 편이다. 치료 성적이 흔한 암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 윤 전문의는 “특히 연부조직 육종의 경우 50개 이상 다양한 아형이 존재해 그에 맞는 항암제 개발이 매우 어렵다”면서 “임상연구에서 반응률이 50% 이상 드라마틱하게 나온 약제가 드물다”고 말했다.

팔·다리 덩어리 만져지면 의심

연부조직 육종의 50%가량은 팔·다리에서 발견된다. 허벅지 어깨 등에 종괴(덩어리)가 만져진다. 하지만 그걸 암이라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서 대부분 병원을 늦게 찾는다. 골육종의 50% 이상은 무릎 관절 주위에 생긴다.

문제는 육종이 복강(배안)이나 심장 등 몸 안에서 발생하는 경우다. 윤 전문의는 “이들은 전체 연부조직 육종의 약 30%로 발견이 쉽지 않고 증상이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또 “모든 암이 그렇듯 연부조직 육종도 다른 장기로 퍼진 4기에 발견되면 5년 생존율이 10%에 불과하고 생존 기간은 16∼18개월에 그친다”면서 “같은 병기의 유방암(30∼40%) 폐암(20∼30%)보다 생존율이 훨씬 더 낮은 만큼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안진희 교수는 “연부조직 육종은 젊은 연령에서도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경제활동이 많은 30, 40대 환자들의 경우 치료 후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희소암은 환자 수가 적어 5대암 검진처럼 국가 차원의 사전 스크린을 강조하긴 어렵다. 윤 전문의는 “다만 연부조직 육종의 절반 이상은 사지에서 발생하므로 팔·다리에 덩어리 같은 게 만져지는 등 특이 변화가 있거나 X선상 뼈에서 비정상적인 뭔가 관찰되면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복지부는 이달부터 면역항암제 등 항암신약의 ‘허가 초과(off label·오프라벨) 사용’이 가능하도록 법령을 바꿨다. 의료기관 내 다학제적위원회를 통하면 한시가 급한 환자들에게 먼저 약을 투여한 뒤 사후에 승인을 받도록 허용한 것이다. 치료제 제약이 많은 희소암 환자들의 선택 폭이 다소 넓어졌다.

정부는 아울러 안전성·유효성이 확인된 의약품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하되 본인부담 수준을 높이는 ‘선별급여 방식’의 건강보장성 확대를 희소암 환자들에게 우선 적용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방침이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