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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떳떳하지 않다는 느낌, 세상을 바꾸는 힘

일본의 인류학자인 마쓰무라 게이치로(오른쪽)가 스물세 살이던 1998년 에티오피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 현지인들과 찍은 사진이다. 그가 펴낸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구걸하던 노파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불쑥 내밀 때처럼, 그때까지 숨겨져 있던 불균형을 눈앞에서 목격하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변한다. 그 변화가 세계를 움직여간다.” 한권의책 제공




어려운 얘기부터 하자. 이 책의 뼈대를 이루는 건 구축주의라는 개념이다. 구축주의는 “어떤 일도 처음부터 본질적인 성질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여러 가지 작용을 받아 구축된다고 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저리 설명하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쉽게 풀어써보자. 과거엔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없었다. ‘스토킹’이나 ‘아동학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 단어가 생겨나면서 스트레스나 스토킹이나 아동학대는 사회문제로 구축될 수 있었다.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지면 관점도 바뀐다”는 게 구축주의의 핵심인데,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어떤 현상이나 물건이 구축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들 수 있다. 희망은 그곳에서 싹튼다.”

저자인 마쓰무라 게이치로(43)는 이렇듯 구축주의라는 지렛대로 세상을 바꿔보자고 제안하는 일본의 인류학자다. 교토대를 나와 1998년부터 20년간 일본과 에티오피아를 오가며 다양한 조사를 벌였다. 현재는 오카야마대 사회문화과학연구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가로 13.5㎝, 세로 19.8㎝ 크기에 무게는 255g밖에 안 되는 얄팍한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꼭꼭 씹어 삼켜야 하는 질긴 고기를 먹을 때처럼 이 책도 그렇게 읽어야 한다. ‘국가’ ‘시장’ ‘감정’ 같은 묵직한 주제가 차례로 등장한다.

세계에서 ‘1등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의 학자가 최빈국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에티오피아를 자주 방문하면서 느낀 건 “압도적인 격차”였다. 구걸하는 사람을 마주하거나 가난에 허덕이는 주민을 만날 때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감정을 느껴야 했다. 저자는 결국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고, 이 책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밑줄을 긋게 만드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표적인 게 증여의 힘을 강조한 부분이다. 언젠가부터 대다수 국가에서는 물건을 사고팔거나 상품을 주고받는 경제적 관계가 사회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됐다. 그런데 매매나 상품 교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관계의 그물망을 짤 수는 없는 걸까. 저자는 “(세상의) 움직임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주고받으며 관계의 자장을 뒤흔들어 그 위치를 비틀어놓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에티오피아의 사례를 든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잘 준다. 분명 외국인이 더 풍요로울 텐데 그다지 넉넉하지도 않은 에티오피아 사람이 더 많이 적선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얼마나 교환 방식에 얽매여 있는 걸까.”

이렇듯 급진적인 발상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다랗게 이어진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나라로 유명한데, 이 나라 국민들은 매일 많게는 다섯 번 넘게 이웃들과 티타임을 가진다. 종교가 달라도 커피를 마시며 흉금을 터놓는다. 무슬림이 커피를 대접하면서 알라에 기도를 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웃은 “아멘”이라며 호응하면서 미소를 주고받는다.

이런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관계는 어떻게 구축되는가. 저자는 “행위를 쌓아갈 때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관계가 행위를 만드는 게 아니라, 행위가 관계를 구축한다는 거다. 지금의 세상을 의심하면서 행동에 나서면 관계의 틀을 다시 짤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은 공평한 사회다. 공평한 사회는 “노력이나 능력이 보상받을 뿐만 아니라, 노력이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평온한 생활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이다. 가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처럼 여겨지겠지만 저자는 비관하지 않는다. “공평함을 향한 욕구는 인간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깊숙한 부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성마른 독자들은 이 서평을 읽으면서 이렇게 짐작할 것이다. 말미에 가면 이 책이 어기찬 결의의 메시지를 던지거나 독자들에게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하달할 거라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이 이대로 가다간 결딴날 거라는 식으로 을러대는 대목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높다란 망루에 걸터앉아 세계의 둘레를 가늠해본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느리게 읽히지만 오래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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