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출판

[책과 길] 때론 통탄하고 때론 질타하며… 우리 시대 향한 지식인의 부탁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73·사진)의 산문집 ‘사소한 부탁’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를 일반 독자에게 각인시킨 첫 번째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가 나온 지 5년 만에 내는 신작이다. 2013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여러 매체에 썼던 글을 시간 순으로 묶은 책이다. 책을 엮은 김민정 시인은 “원고지 900매 가까운 글을 5부로 나누어 담을 때 그 어떤 의심이나 망설임 없이 시간에 따라 배열한 건 그 자체가 한국의 정치사이자 문화사이기 때문”이라며 “(황현산) 선생의 작은 부탁들로 채워진 산문집”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엔 박근혜정부 초기에 쓴 ‘홍어와 근대주의’부터 세월호 참사 직후 발표한 ‘악마의 존재 방식’, 지난해 연말에 쓴 시 비평까지 60여편이 담겨 있다.

어디를 펴더라도 글로써 시대에 대한 예의를 다한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함께 번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가 진정한 앎이며, 한쪽의 동포가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진정한 국력이다. 거기에서가 아니라면 한 국가의 자존심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전쟁을 안 할 수 있는 능력’)

얼핏 보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쓴 것 같지만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던 2013년 호전주의를 경계하며 그가 낸 목소리다. 대입 입시에 인성 검사를 검토하겠다는 교육부총리에게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맞게 사람을 교양하려는 시도는 사람을 배반한다. … 그는 자신의 인성부터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지난 시간 권력을 향해 이런 목소리를 낸 문인이 과연 몇이나 됐던가. 세월호 참사 앞에서는 “거대한 무력감을 우리는 지금 다시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고 문화예술 검열에 대해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라고 통탄하기도 했다. 표절, 여성 혐오, 약어 사용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글도 제법 있다.

언젠가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생각의 체계를 한마디로 뭉뚱그린다면 역사주의”라고 했다. 이번 산문집에는 그런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를 향해 하는 사소한 부탁이나 질책에 가까운 얘기가 많다. 우리 사회를 위해 이런 글을 쓰는 이가 있다는 데 어떤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이 허락될 때 그가 쓴 글을 아껴 읽고 싶어진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