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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에게 묻다] 완치 힘들다는 당뇨, 위·소장 직통수술로 잡는다

순천향대서울병원 외과 허경열 교수(오른쪽 두번째)팀이 지난 22일 당뇨수술센터에서 당뇨를 10년 이상 앓아 합병증 발생위험이 높은 환자의 위 유문 괄약근을 하부소장에 연결해주는 ‘유문소장 문합술’을 시술하고 있다. 순천향대서울병원 제공




순천향대서울병원 당뇨수술센터장 허경열(59·사진) 교수는 일반적으로 불가역적(발병 전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이라고 생각되는 당뇨를 수술로 치료하는 외과 의사다.

관리가 어렵고 완치는 더더욱 어려운 당뇨병. 미래가 암울한 당뇨 환자들을 약이나 식이요법이 아닌 수술로 치료해 새 희망을 키워주는 의사가 허 교수다.

그는 위 유문부에 하부 소장을 연결, 인슐린 분비를 조절해주는 방법(단일문합 유문소장 문합술)으로 당뇨를 치료한다. 이른바 ‘허경열식 당뇨수술법’이다.

허 교수는 순천향의대 제1회 졸업생이다. 순천향대의료원장과 보훈병원장을 역임한 아버지 허경발(91) 박사의 영향으로 간담췌외과 전문의가 됐다. 2003∼2006년, 3년간 한솔병원 복강경위장수술센터 및 복강경탈장수술센터 소장으로 일한 기간만 빼고 1984년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줄곧 순천향대병원 외과를 지켜오고 있다.

97년 일본 도쿄 게이오대병원 복강경수술센터, 99년 9월∼2000년 8월 미국 뉴욕의대 웨스트체스터 메디컬센터 복강경수술센터 및 슬로안 케터링 암센터,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에서 각각 최신식 복강경수술법을 익혔다. 2003년에는 일본 아이찌 후지타 건강대학병원과 타이페이 엔추공병원에서 조기위암 복강경수술법과 베리아트릭(위 축소 방식 고도비만 치료법) 수술법도 연마했다.

현재 대한내시경복강경외과학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돼 있는 허 교수에게 과연 당뇨수술이란 무엇이며, 어떤 경우에 적용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수술 후 합병증 위험 벗어나

98년부터 당뇨를 앓아 온 이승엽(가명·58)씨. 2016년 말 허 교수에게 당뇨수술을 받은 뒤 새 삶을 얻은 환자다.

이씨는 혈당조절을 위해 노력했지만 병력이 2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증상이 점점 악화됐다. 허 교수에게 당뇨수술을 받기 직전에는 인슐린 주사로도 혈당조절이 안되고 단백뇨 수치가 900(정상치 30 이하)까지 치솟았다. 당화혈색소 역시 6.5 이하여야 정상인데 8.2까지 오르고 콩팥기능저하로 투석치료를 고려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고심 끝에 이씨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당뇨수술을 결심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수술 후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단백뇨와 당화혈색소 수치는 각각 100, 6.5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수술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신부전증을 합병할 수도 있었을 위기상황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씨는 25일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고, 설탕 덩어리 믹스커피를 하루 3∼4잔씩 먹어도 당화혈색소가 정상 수준을 유지한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새 인생을 살게 된 것 같아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존 축소 위 우회술 단점 보완

이씨가 받은 당뇨수술은 허 교수가 기존의 축소 위 우회술의 단점을 보완, 독자적으로 새로이 개발한 치료법이다. 위 크기를 줄여 하부소장과 연결하던 방법 대신, 위를 그대로 둔 채 십이지장과 연결되는 위장의 유문 괄약근을 소장에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위를 우회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두기 때문에 내시경 진단에 전혀 문제가 없고, 유문 괄약근도 살려 덤핑증후군이나 변연부(邊緣部·둘레)궤양과 같은 위 수술 합병증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십이지장을 완전히 우회하게 되기 때문에 재발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것이 허 교수의 설명이다. 덤핑증후군은 음식물이 급격하게 대량으로 작은창자로 들어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들을 가리킨다. 즉 식후에 가슴 답답함, 오심, 구토 등의 복부 불편감 외에 탈력감 현기증 두중감 발한 심계항진 등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기존의 축소 위 우회술은 당뇨의 재발이나 특별한 합병증이 없는 안전한 수술이지만 우회한 위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내시경 진단이 어려워지는 게 단점이었다. 덤핑증후군이 생기는 것도 수술 후 위와 십이지장의 연결부위인 유문괄약근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인크레틴 분비의 균형을 바로잡아

일반적으로 우리 몸은 혈당의 높고 낮음에 따라 췌장에서 인슐린과 글루카곤 호르몬을 분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두 호르몬과 더불어 혈당조절을 돕는 호르몬이 있다. 소장이 영양분 대사활동을 시작할 때 분비하는 ‘인크레틴’이란 호르몬이다.

위 유문괄약근과 소장을 연결해주는 당뇨수술이 혈당조절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 인크레틴 호르몬 분비를 조절,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이 외에도 음식물에 포함된 영양분이 위를 거쳐 상부소장으로 들어가면 GIP(Gastric inhibitory Polypeptide), 하부소장에 다다르면 GLP-1(Glucagon Like Peptide-1)이라는 호르몬을 각각 분비한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호르몬들이다.

문제는 이들 두 호르몬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발생한다. 껍질을 완전히 벗겨낸 흰쌀로 만든 밥, 먹기 좋게 갈아 부드럽게 만든 주스 등 입맛에 맞춰 잘 정제된 음식만을 주로 먹다 보면 상부소장이 영양분을 대부분 흡수, GIP만 과도하게 분비되고 GLP-1 분비가 줄어드는 불균형이 일어나게 된다.

실제 당뇨 환자들을 보면 혈중 GIP 수치는 매우 높고 GLP-1은 정상인에 비해 월등히 낮은 경우가 많다. 과도한 GIP 분비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슐린 기능까지 떨어뜨린다.

당뇨수술은 상부소장의 GIP와 하부소장의 GLP-1 호르몬의 이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는 효과를 낸다. 음식물의 영양이 상부소장을 거치지 않고 하부소장으로 곧장 들어가게 만들어 모자라는 GLP-1 분비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허 교수는 “18년 전 미국 연수 때 터득한 유문보전 췌·십이지장 절제술의 일부를 그대로 당뇨수술에 응용한 것으로 수술 효과는 그대로 유지한 채 안전성을 높이고 단점을 개선한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2015년부터 이 방법으로 국내외 마른 당뇨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그동안 수술을 받고 혈당조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환자가 벌써 65명에 이른다. 앞서 허 교수는 2009년부터 시작한 기존의 위 축소술(위·공장 문합술)로 180여 명의 당뇨 환자를 치료한 바 있다.

허 교수는 “모름지기 수술은 간단하고 안전해야 한다. 아울러 수술 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해줘야 한다. 새 당뇨수술이 바로 그런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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