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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내 전성기는 지금부터, 나이 들수록 화려해져” [인터뷰]

‘관부 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의 주연배우 김희애. 그는 “촬영장에서 모두 하나가 됐던 기억이 난다. ‘대충 타협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 나 역시 누를 끼치지 않으려 정신 바짝 차리고 진심을 다해 임했다”고 했다. NEW 제공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NEW 제공




우아하거나 고상하거나. 지난 30여년간 배우 김희애(51)를 수식해 온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저야 부담스럽죠. (실제 제 모습을 보시면) 실망하실 테니까요. 제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죄송스럽더라고요. 아휴, 어쩌겠어요(웃음).”

오는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김희애를 만날 수 있다. 1992년부터 6년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일부 승소를 이끌어낸 ‘관부 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 극 중 김희애는 물심양면으로 재판을 도운 부산 지역 사업가 문정숙을 연기했다.

정숙은 한마디로 대찬 여장부 스타일이다.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제 할 말을 다 하고야 만다. 1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희애는 “솔직히 말하면 거창한 사명감으로 이 작품에 임한 건 아니었다”며 “단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약자를 돕는 정숙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막상 역할을 소화해내는 건 녹록지 않았다. 엄격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그가 체중 5㎏을 늘린 건 시작에 불과했다. “저는 아이 둘 낳은 이후 체중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요. 13년간 화장품 모델을 했으니까요. 조금만 살이 쪄도 금세 표가 나거든요. 이번만큼은 ‘실컷 먹고 연기로 불살라보자’ 했죠(웃음).”

가장 큰 난관은 언어였다.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 연습을 3개월간 밤낮없이 하고 또 했다. 생전 처음 도전한 사투리가 입에 익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일 때문에 잠깐 미국에 머물렀을 때도 사투리 선생님과 매일 통화하며 감을 유지했다. 일본어 대사는 어찌나 달달 외웠던지 지금도 줄줄 읊을 정도다.

“배우로서 큰 도전이었어요. ‘그동안 쌓아 온 내 커리어가 한순간에 무너지는구나’ 두렵기까지 했다니까요. 차라리 오락성 짙은 드라마였으면 ‘망신 한번 당하고 말자’ 했을 텐데, 이 작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아픈 역사에 대해 알아가면서 ‘한낱 언어 따위 극복해내지 못하랴’는 마음이 생겼죠.”

김희애는 “알게 모르게 부담이 컸던 것 같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울음이 터지더라. 배우 생활을 오래 했지만 그렇게 운 건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 생각해 보니 내 한계를 실험해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후회 없이 연기했기에 기분이 좋다. 연기자로서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라고 흐뭇해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대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두 아들을 둔 워킹맘이다. “예전엔 일의 소중함을 몰랐다”는 김희애는 “김해숙 예수정 문숙 등 이번 작품을 함께한 선배들이 현장에서 신인처럼 떨려 하고 신나 하시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연기가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고 했다. “결혼 전 저는 미완성된, 풋내 나는 인간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에게 경험이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죠.” 작품 보는 눈은 한결 유연해졌다. “한 가지라도 건질 만한 게 있으면 합니다. 점점 들어오는 작품도 줄어드는데, 안 그럼 10년에 하나도 못해요(웃음).”

1990년대를 풍미하며 배우로서 정점을 찍었던 김희애는 지금, 더 찬란한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내 전성기가 20∼30대 때였다고들 하는데 난 오히려 지금인 것 같다. 나이는 들었어도, 더 밝고 화려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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