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스8’ 쿨한 언니들의 한탕, 이런 파격을 기다렸다 [리뷰]

여성 캐릭터들로 채워진 범죄 오락영화 ‘오션스 8’의 주역들. 왼쪽부터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민디 캘링, 사라 폴슨, 아콰피나, 앤 해서웨이, 리한나, 헬레나 본햄 카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판을 벌이는 건 언제나 남성이었다.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그랬다. 특히나 큰 규모의 범죄를 모의하고 계획해 실행해 나가는 케이퍼 무비에서 여성이 끼어들 틈 따위는 없었다. 기껏해야 미인계로 타깃을 유혹하는 장르적 도구로서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오션스8’(감독 게리 로스)의 패기 어린 등장이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를 필두로 한 남성 군단의 활약을 담은 오션스 시리즈 3부작의 뒤를 잇는 작품. 마치 공식이라도 되듯 공고히 유지됐던 그 성별의 틀이 10여년 만에 비로소 깨졌다. 이번에는 여성들이 뭉쳤다.

전작들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대니 오션의 여동생 데비 오션(샌드라 불럭)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시리즈의 첫 작품 ‘오션스 일레븐’(2001)을 오마주한 데비의 첫 등장 시퀀스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호기롭다.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교도관에게 능청스럽게 거짓 약속을 하는 모습이 대니를 빼다 박았다.

전 애인의 배신으로 5년간 감옥에서 썩은 데비는 가석방되자마자 믿음직한 동료 루(케이트 블란쳇)와 새로운 작업에 착수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패션 행사 ‘멧 갈라’에서 톱스타 다프네(앤 해서웨이)가 착용하는 1500억원짜리 명품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

다음 수순은 불 보듯 뻔하다. 함께 거사를 도모할 각 분야 ‘전문가’들을 하나둘 불러 모으는 것. 의상 디자이너 로즈 바일(헬레나 본햄 카터)부터 보석 세공사 아미타(민디 캘링), 암시장 장물아비 태미(사라 폴슨), 소매치기 콘스탄스(아콰피나), 해커 나인 볼(리한나)까지 빈틈없는 한 팀을 이룬다.

멤버들이 합류하는 과정을 차례로 보여주는 초중반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차분히 흘러간다. 띄엄띄엄 배치된 자잘한 유머들에 종종 미세한 웃음이 새어 나올 뿐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하는 후반부다. 치밀하게 계산된 장치들이 물 흐르듯 연결되는 과정에서 이 시리즈 특유의 매력이 배어난다.

못내 아쉬운 건 전작들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사건의 스케일 면에서도, 플롯의 치밀함 면에서도 놀랄 만한 수준의 진보를 보여주지 못한다. 막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는 흥미로우나 그뿐이다. 이런 장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긴장감이나 카타르시스가 끝내 폭발하지 않는다.

각 등장인물의 특성은 선명하게 살아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데에는 얼마간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다양하게 구성된 캐릭터들이 각자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극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데비와 루의 존재감은 전작의 대니와 러스티(브래드 피트)의 그것에 비해 다소 미미하다.

각자의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상이 그려졌다는 점에서는 분명 고무적이다. 특히 ‘두뇌가 청순한 미녀’ 이미지에 그칠 수 있었던 다프네를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한 지점에서 통쾌함을 안겨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남성은 무능한데, 이런 식의 캐릭터 배치부터가 신선하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선 장르적 완성도를 논하기보다 시대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런 상상 또한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김혜수 전도연이 판을 깔고, 전지현 손예진 한효주 김태리 같은 배우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뿜어내는 그런 영화 말이다. 13일 개봉. 110분. 12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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