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NA를 되살리자] 탈북민·여성 한계 넘어… ‘더 큰 꿈을 향해’ 질주

탈북한 후 여성 발명가의 삶을 사는 김정아씨가 지난달 23일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제물포센터에서 자신이 발명한 세면대 부품을 들고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탈북 경험을 책으로 펴낸 작가 이채명씨가 지난달 16일 기자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모습. 최종학 선임기자


탈북민 그리고 여성. 출발부터 불리한 처지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더 큰 꿈을 향해 도전 중이었다.

“내가 발명왕이 될 줄은…”

짧은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한 여성이 작은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이 작은 아이디어로 특허를 내고 사업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달 23일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제물포센터에서 만난 탈북민 출신 사업가 김정아(43·여)씨다.

그는 세면대 배수구 부품을 개발해 2016년 생활발명코리아 대회에서 대통령상과 발명장려금 1000만원을 받았다. ‘속 시원한 세면기’라 이름 붙인 이 제품은 세면대나 욕조의 배수구가 머리카락 등 이물질로 막히지 않도록 기존 배수구 밸브를 개량한 것이다. 수상을 발판 삼아 김씨는 남편과 함께 ‘성진’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차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엔 소량 주문을 받아 납품을 하다가 지금은 ‘11번가’ ‘쿠팡’ 같은 쇼핑몰과 미국 아마존에서 제품을 판매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개의 발명이 그렇듯 김씨 제품도 생활 속 불편에서 탄생했다. 잦은 방송 출연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2016년 봄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러 세수를 하는데 세면대의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남편에게 “내가 과부때기(과부를 뜻하는 북한말)냐”고 소리를 지르고 집에서 나왔다. 미리 세면대를 뚫지 않은 남편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세면대 부품을 죄다 뜯어놨다. 김씨는 “속을 들여다보니 막힐 수밖에 없더라”며 “수동 밸브는 배수 뚜껑을 여닫도록 하는 지렛대, 자동 밸브는 회오리 모양의 부품에 이물질이 잘 걸린다”고 말했다.

그 순간 지우고 싶던 기억에서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북한에는 상하수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 비가 많이 오면 좁은 도랑에 오물이 넘치곤 했다. 그때마다 이웃들과 힘을 합쳐 물길을 틀었다. 세면대 부품을 골똘히 쳐다보던 남편에게 “물길을 돌리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발명의 시작이었다.

발명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김씨는 무대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김씨는 “죽음의 고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며 “내가 북한에서 이 제품을 개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에 있을 때 쌀 2㎏을 술로 바꿔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남편한테 폭행을 당해 태중의 아들을 10개월 만에 잃은 사건, 2006년 6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북한의 국경을 넘었던 순간, 연평도 포격 당시 일하던 회사에서 “전쟁 나면 어느 편에 설 것이냐”는 말을 들으며 차별 당했던 일…. 아픈 기억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후 2년여 동안 김씨와 남편은 성실하게 사업체를 일궜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보육기업으로 선정돼 사무실을 얻었고 주문이 들어오면 남편과 밤새며 부품 200여개를 만들었다.

지난 4월부터는 한국무역협회의 지원을 받아 미국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해당 프로젝트에 신청한 300개 국내기업 중 30위 안에 들었다”며 “이제 전 세계에서 ‘속 시원한 세면기’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물었다. “북한과 중국에 있는 딸들을 품에 안고 엄마 노릇 제대로 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자녀와 생이별한 탈북 여성들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비영리 민간단체 통일맘연합회 대표를 맡고 있다. 김씨는 “앞으로 사업 수익의 10%를 단체 운영비로 쓰겠다”며 “공장을 열면 부품 조립은 탈북 여성들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려는 탈북여성들의 마음이 모이면 통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명에게라도 용기 줄 수 있다면…”

“어떤 분의 전화를 받았는데 사기를 당해서 삶을 포기하려 했는데 제 책을 읽고 힘을 얻었다며 울더라고요.”

지난달 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탈북민 출신 여성 작가 이채명(35·여)씨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 1월 11일 자전적 에세이 ‘내 생애 단 한 번 희망을 가지다’를 출간했다. 이씨는 “최근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누구든 고민을 털어놓으면 위로와 격려를 해준다”며 겸연쩍은 듯 말했다. 인터뷰 중에도 이씨의 휴대전화는 계속 울렸다.

“그냥 ‘탈북민’이 아니라 ‘작가님’으로 불리게 돼서 기분 좋다”는 그가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 2년 전 부산의 한 책방에서 나폴레온 힐의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을 우연히 보게 됐다. 책을 읽고 나니 ‘나는 꿈도 없이 힘들게만 살았구나’라는 박탈감이 들었다. 꿈을 정했다. 작가가 되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매일 서점을 찾아가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글 쓰는 법을 배우려고 유명 작가를 무작정 찾아갔다. 첫 책의 주제는 자신의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로 정했다. 집 앞 카페에 틀어박혀 종일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글을 써내려가려니 아픈 과거를 되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씨는 “일단 마음을 먹었으니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한 사람이라도 내 책을 읽고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1살 때 가난한 가족 대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북한 땅에서 벗어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인신매매로 팔려가 원치 않은 결혼을 했고 남한 땅을 밟기 위해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갖은 차별에 시달렸다. 첫 직장이었던 톨게이트에선 한 사람만 실수해도 모든 탈북민이 집합을 당해 관리자의 고성을 들어야 했다. 부산의 한 다방에서 일할 때는 손님들의 스킨십을 거부하다 “우리가 낸 세금 먹고 사는 빨갱이 주제에”라는 모진 말도 들었다. 이씨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내가 미워서 태풍 부는 날, 부산 앞바다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게 3년 전 여름이었다.

삶의 고비마다 이씨는 펜을 잡았다. 힘든 일이 생기면 일기를 꾹꾹 눌러쓰며 마음을 달랬다. 책 한 권 분량에 이른 일기가 자산이 됐다.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들은 일기장에 100번씩 적기도 했다. 어떻게든 성공할 방법을 찾으려고 퇴근 후에는 유튜브로 유명 인사들의 강의 영상을 봤다.

그의 최종 목표는 ‘희망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 이씨는 “탈북민은 많은 일을 겪었고 상처도 많아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며 “힐링카페를 만들어 탈북민들을 상담해주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한 사람 중에서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더라”며 “나 같은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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