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한국사회, 체벌 없이 아이 키울 준비됐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학대에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국민일보의 기획보도를 마무리하는 좌담회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모두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박우근 안서연 최수영 변호사,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김지훈 기자


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2부> 해외 사례: 해외에서의 훈육과 학대 경계선
<3부> 대안을 찾아서
① 부모교육과 재발 방지책부터
② 전문가 대담 (끝) 아동학대 판결문 분석한 전문가 4명의 의견은


훈육과 학대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어떤 기준이 적절한지는 전문가들도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아이를 때려서라도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의견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국민일보는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아동학대 판결문 분석에 참여한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과 박우근 안서연 최수영 변호사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사회는 체벌 없이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두 달간 아동학대 판결문 106건을 들여다봤다. 이번 작업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장화정 관장=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2014년 9월부터 시행됐다. 만 4년 가까이 됐고 햇수로 따지면 올해 5년차다. 판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취합하기가 어려워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이번 분석이 변화를 꾀할 초석이 됐다고 본다.

△박우근 변호사=이제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판례를 분석하면서 기존 연구가 부족했다는 점을 절감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서연 변호사=한 분야의 판례를 이렇게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도 오랫동안 현장에서 아동학대를 다뤄왔지만 판결문 100여건을 한꺼번에 본 건 처음이었다. 분석해보니 2012년 판결문과 최근 판결문이 다르더라. 특례법이 제정된 후로 판결문도 좀 더 세심하게 작성하고 사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 티가 났다. 변하긴 변했구나 싶었다.

△최수영 변호사=변한 건 맞다. 하지만 이번 분석을 통해 일반인의 법 감정과 판결문의 괴리가 여전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주어진 과제가 많다.

-판례를 분석하면서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 지점은.

△장 관장=처벌이 강화돼야 한다. 처벌 위주로 가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동학대는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아이를 때리면 이렇게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걸 일단 알려야 국민 인식도 바뀐다. 자신이 하는 행동 때문에 교도소에 갈 수도 있다는 걸 알면 바뀔 수밖에 없다. 법이 인식을 바꾼다. 시급한 걸 꼽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후처리 문제도 심각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부모의 경우 집행유예가 많이 나오는데 집으로 돌아가서 재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교화를 해야 한다. 가정 내 학대는 심각한 경우에만 신고가 들어오고 상습성도 제대로 인정을 안 해주는데 이 부분도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안 변호사=판결문은 어린이집 종사자나 부모에 대한 행위규범이기도 하다. 어린이집 교사들과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CCTV 영상을 봤을 때 분명히 학대에 해당하는 행위인데 교사들 전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더라. 수십년 경력을 가진 평범한 교사들인데도 그랬다. 현장 인식이 그 정도 수준인 거다. 법원이 일관되게 이런 행위는 학대에 해당하고 이 정도 처벌을 받는다는 걸 계속 말해줘야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행위별로 개별적 양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최 변호사=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양형기준이 절실하다. 사건마다 이런 기준이 일관성 있게 적용되기만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구체적인 처벌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학대로 볼 건지다. 체벌 금지 여부도 논란이 많다. 모든 형태의 체벌이 불법이라고 명시한 판결문은 2건에 그쳤다. 한국 사회는 체벌을 전면 금지할 준비가 돼 있나. 일부 체벌은 허용해야 하나.

△장 관장=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선 법이 이미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고 본다. 아동복지법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행위’는 신체적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이나 영유아보육법도 마찬가지다. 국민 인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법 적용이 미뤄진 것이다. 현실을 고려했을 때 당장 체벌을 원천 금지하자고 말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금지해야 하고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박 변호사=맞다. 법과 인식의 변화가 같이 가야 한다.

△안 변호사=제 의견은 조금 다르다. 체벌에 한해서는 인식 변화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본다. 주변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체벌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자기 윗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때릴 수 있겠나. 나보다 약자니까, 만만해서, 본인 화에 못 이겨서 때리는 거다.

△최 변호사=인식보다 법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아동학대는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고 지속될수록 학대 정도도 심해진다. 분풀이 수단으로 학대행위를 하면서도 훈육이나 체벌의 일환으로 생각하곤 한다. 모든 형태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판결문에는 체벌 외에 아이를 방 안에 혼자 두기부터 배식에서 제외시키기, 욕설하기 등 다양한 유형의 사례가 등장했다. 반면 법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추상적 표현에 그치고 있다.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

△박 변호사=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예를 들어 ‘찌끄레기’ 발언은 대법원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아동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정말 몰랐을까. 반복적으로 들었는데 아이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런 부분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었어야 한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아동심리학계 등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서 어떤 행위와 발언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연구가 없다.

△장 관장=말로 하는 심리적 폭력이 아이를 정서적으로 얼마나 불안하게 하고 위축되게 하는지 국민과 재판부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것도 모두 정서적 학대로 인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정서적 학대가 신체적 학대나 방임과 같은 수준으로 아이에게 고통을 준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 인식이 필요하다.

△최 변호사=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지금은 양형 기준 같은 부분에서 차이가 없다. 어떤 행위가 정서적 학대이고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사례를 정립하고 법제화해야 한다.

-판결문을 분석하면서 법 외의 영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박 변호사=교육도 중요하다. 인권을 가르치지 않는 것도 인권침해라는 말이 있다.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주어졌는지 모르면 그 권리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도 마찬가지다. 부모뿐만 아니라 아동들을 대상으로 어떤 행위가 학대인지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이 학대를 당했을 때 그 행위가 훈육이 아닌 학대임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장 관장=할 얘기가 너무 많다. 아동학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니 법이 갖춰져도 현실이 따라가지 못한다. 일정 수준보다 심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가정에서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시설 상황이 열악하니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학대에 노출된다. 중요한 건 정부와 사회의 인식이다. 아동학대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산과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아이의 안전을 한 번씩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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