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캐나다 “합당한 체벌 훈육 필요” vs “학대 부모 보호 없어야”

캐나다 시민단체 ‘킵43’의 해럴드 호프 대표가 지난 23일 온타리오주 해밀턴의 자택 겸 사무실에서 훈육과 아동학대의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킵43은 훈육 목적의 체벌을 허용하는 형법 43조를 옹호하는 단체다.






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2부> 해외 사례: 해외에서의 훈육과 학대 경계선
① ‘체벌 프리존’ 변하는 프랑스
② 심리적 학대 해결 나선 일본
③ 몽골의 ‘긍정적 훈육’
④ 체벌금지법, 진통 겪는 캐나다
<3부> 대안을 찾아서


법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잘못 바로잡을 목적으로
힘 사용 땐 처벌 대상서 제외 형법 43조 놓고 논란 거듭

시민사회·진보 정당 중심 법 폐지하려는 노력 계속
법 지키는 모임·보수 정당은 “무분별 학대 막을 장치 존치를”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소도시 해밀턴에는 찍어놓은 듯 똑같이 생긴 집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한 집 앞에 서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백인 남성이 ‘형법 43조를 지키는 모임’(킵43·Keep43 Committee)의 대표 해럴드 호프(55)씨였다.

킵43의 사무실이기도 한 호프 대표의 집으로 들어서자 인형과 장난감이 가득 놓인 방이 보였다. 지하 자료실로 내려가는 길에는 남자 아이의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호프 대표의 외아들이었다.

호프 대표는 2014년 여름 바로 이 집에서 지역아동센터(Children’s Aid Society)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7살이던 아들을 학대했다는 혐의였다. 아동센터는 호프 대표와 아내, 아들을 각기 다른 방으로 불러 조사했다. 호프 대표는 아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체벌하겠다’고 충분히 경고한 후 팔을 7대 때렸으며 상처도 남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다른 가족의 진술도 일치했다. 결론은 무혐의였다. 호프 대표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의 훈육권을 옹호하는 단체 킵43을 만들었다.

캐나다 형법 43조에 따르면 ‘합당한 범위’ 내에서 부모 또는 교사가 자녀나 학생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힘을 사용하면 아동학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이 조항이 아동학대와 훈육을 나누는 법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준은 2004년 대법원 판결로 더 명확해졌다. 체벌이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으려면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목적’이 있어야 하고 머리나 얼굴을 때려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상처가 남아서도 안 되고 허리띠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2세 이하와 12세 이상은 어떤 경우에도 체벌할 수 없다.

형법 43조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교육계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에서는 이 조항이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를 보호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형법 43조를 지지한다고 해서 무조건 폭력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호프 대표도 사랑 없이 가해진 체벌은 아동 정서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히려 이 때문에 형법 43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형법 43조가 아동 훈육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합리적인 양육을 돕고 지나친 폭행을 금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프 대표는 “아동센터는 부모마다 훈육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부모와 자식을 떨어뜨려 놓는다”며 “그나마 형법 43조가 체벌과 아동학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돼 왔는데 이마저 없어져서 안 된다”고 말했다.

형법 43조가 존재하는 현재 상황에서도 자식을 훈육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부모들이 있다. 킵43에는 “정부와 지역아동센터가 자녀 양육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제보가 심심찮게 들어온다.

호프 대표는 “지역아동센터는 법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정서적 학대를 가려내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프 대표의 주장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지역아동센터에서 또 다시 공문을 받았다. 그가 아들을 학대한다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호프 대표는 자신의 활동에 불만을 가진 누군가가 허위 신고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나는 아이를 체벌하기 전에 반드시 ‘이 이상 말을 듣지 않으면 체벌하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에는 반드시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뒤 체벌한다”며 “법적 기준을 정확히 지켜 훈육하고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제보자가 자꾸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호프 대표는 훈육을 위한 체벌에 찬성하지만 체벌이 아동학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도 늘 관심을 갖는다. 그는 직접 자료를 모아 훈육법에 관한 책 4권을 출판했다.

그는 기자에게 책 내용을 하나하나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학대에 시달린 아동이 겪어야 할 어려움, 정당한 체벌을 금지했을 때 무분별한 학대가 발생할 가능성을 그는 우려했다.

호프 대표는 “사람마다 훈육 방법이 다르고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사회과학적 배경이 있다”며 “그 차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체벌만 없애면 오히려 아이들이 고통 받는다”고 주장했다.

해밀턴(캐나다)=글·사진 이택현 기자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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