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헌재, 달라진 여론… 다시 심판대 오른 ‘낙태죄’ 운명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한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합헌측 “생명은 절대 가치” 위헌측 “사실상 사문화”
폐지 청원 23만명 넘어… 재판관 구성 달라져 ‘변수’


헌법재판소가 24일(한국시간) 낙태를 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위헌인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낙태죄에 대해 2012년 8월 합헌 결정을 내린 지 5년9개월 만이다.

이전 사건에서 합헌과 위헌 의견은 각각 4명으로 위헌정족수 6명에 미달됐다. 헌재는 “사익(私益)인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公益)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공개 변론은 낙태시술 혐의(업무상승낙낙태)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가 1심 재판을 받던 지난해 2월 형법 269조, 270조 낙태죄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며 헌법소원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정씨 측 변호인단은 변론에서 “태아는 생존을 모체에 전적으로 의존해 모(母)와 동등 수준의 생명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낙태죄는 여성이 자유롭게 임신·출산하고 그 시기를 정할 자유를 제한한다”며 “임신 12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낙태죄 처벌 사례가 거의 없어 사문화됐고 낙태죄가 낙태율을 낮춘다는 것도 확인된 바 없는 가정”이라고 말했다. 임신 초기 낙태를 포함해 모든 낙태를 처벌하고 모자보건법상 예외 규정도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모자보건법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적 정신장애·신체질환이 있거나 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등에 예외적으로 낙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이해관계인으로 나온 법무부 측은 “태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의학 발전으로 모체를 떠난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늘어 임신 초기 낙태를 전면허용해선 안 되며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면 낙태가 무분별하게 허용된다고 우려했다. 절대적 가치를 가진 생명권의 보장을 위해선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며 임부(妊婦)의 자기결정권을 위해서는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낙태 허용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봤다.

찬반 주장은 5년 전 헌법소원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동안의 사회적 합의나 입법적 개선 노력이 부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낙태죄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없고 시도도 없는데 어떻게 대안을 마련해야 하느냐”고 법무부 측에 질문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쉬운 대목”이라며 “헌법소원과 별개로 국회에서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한 입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헌재 안팎에선 치열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소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임신 뒤)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일원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유남석 재판관도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조화를 주장한 바 있다. 현 재판관 중 최소 6명이 이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내에서도 입장 차이가 있다. 법무부와 달리 여성가족부는 지난 3월 30일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냈다. 지난해 9월 청와대 청원 페이지에선 낙태죄 폐지 요청 청원이 23만명을 돌파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여론에 따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맡겼다. 결과는 오는 10월쯤 나온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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