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日서는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도 아동학대

일본 도쿄에서 가장 큰 아동상담소인 신주쿠의 아동가정종합센터 상담실 문 앞에 지난 10일 학대피해 아동과 상담이 진행 중임을 알리는 등이 켜져 있다.
 
센터 내 공작실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




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2부> 해외 사례: 해외에서의 훈육과 학대 경계선
① ‘체벌프리존’ 변하는 프랑스
② 심리적 학대 해결 나선 일본
③ 몽골의 ‘긍정적 훈육’
④ 체벌금지법, 진통 겪는 캐나다
<3부> 대안을 찾아서


부모의 불화가 자녀에게 정신적 상흔을 남기고 학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교육 목적이라면 체벌이 괜찮다는 인식 바뀌지 않아 ‘사랑의 매’는 여전히 용인


초록색 문 밖으로 울음 섞인 아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방에서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소리도 들렸다. 지난 10일 오후 기자가 방문한 일본 도쿄 신주쿠의 도쿄아동가정종합센터 3층에서는 어린이 상담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기자들을 안내한 직원 야도이와 마사히로씨는 “목소리를 낮춰 달라”며 “상담 중인 아이가 낯선 소리에 겁먹을 수 있다”고 부탁했다.

이곳은 한국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도쿄도에서 가장 큰 아동상담소다. 부모에게 심리·신체·성적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 일시보호 중인 학대피해 아동만 56명이다. 센터 최대 수용 인원인 56명을 꽉 채웠다. 야도이와씨는 “56명 넘게 보호할 때도 많다”고 했다.

아동학대의 개념 바꾼 일본

일본에서는 아동학대 신고가 크게 늘고 있다. 도쿄도 내 11개 아동상담소의 아동학대 상담 건수가 2012년 4792건에서 2016년 1만2934건으로 4년 만에 270% 가까이 늘었다. 이 중 실제로 아동학대로 인정돼 경찰이나 아동상담소가 개입한 건수는 매년 80% 안팎이다.

그 배경에는 달라진 아동학대의 개념이 있다. 2004년 아동학대방지법을 개정하면서 자녀가 가정 내의 폭력을 목격하게 하는 것도 아동학대라 규정했다. 부부싸움이 자녀에게 정신적 상흔을 남길 뿐만 아니라 싸움이 자녀에 대한 체벌과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법이 개정된 후 직접 체벌뿐 아니라 심리적 학대도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심리적 학대에는 아이를 향한 폭언과 협박 외에 ‘아동의 부부싸움 목격’ ‘아동을 무시하는 부모의 태도’ ‘형제자매 간 두드러진 차별’ ‘형제자매에 대한 학대 목격’까지 포함된다.

심리적 학대는 체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데다 그 자체로 체벌 못지않은 심리적 충격을 남기기 때문에 아동학대와 마찬가지라는 것이 법 개정의 취지였다. 지난 7일 요코하마 아동 무지개 정보연수센터에서 만난 가와마쓰 아키라 연구부장은 “(심리적 학대에는) 부모 또는 교사가 훈육을 이유로 벌인 행동이 많다”면서 “이를 학대라고 생각하지 못해 더 큰 피해를 낳는 경우가 있어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일본 경찰이 전국 아동상담소에 통보한 아동학대 의심 사례 6만5341명 중 심리적 학대가 4만6439명이었다. 심리적 학대가 전체 아동학대의 71.0%였다. 야도이와씨는 “과거 일본사회가 훈육으로 치부한 일들을 학대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신고가 늘어난 결과”라며 “심리적 학대를 아동학대 범주에 포함시킨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경찰도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부부싸움 현장에서 자녀를 발견할 경우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즉시 지역 아동상담소에 통보해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케 하고 있다. 야도이와씨는 “경찰이 아동상담소와 협력하면서 심리적 학대 의심 사례 통보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갈 길이 멀다

일본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메이와쿠’가 사회 전반에 뿌리 깊다. 메이와쿠를 아이에게 가르치는 과정에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체벌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통용돼 왔다.

아동 무지개 정보연수센터 마쓰자와 다카시 연구원은 “일본에서는 시쓰케(しつけ·예의범절을 가르치는 행위) 중 부부 간 의견이 달라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심심찮다”며 “문제는 이 싸움이 아이에 대한 체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부부가 싸움의 원인을 자녀에게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밥상머리 교육 중 이런 일이 잘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심리적 학대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일본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마쓰자와씨는 “아동학대 관련 신고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히 고무적”이라면서도 “아동이 부모나 교사에게 맞아 멍이 생겨도 교육을 위한 목적이라면 괜찮다는 식의 인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맞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면 자신의 아이에게 똑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가와마쓰 연구부장은 아동학대 신고가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기성세대와 비교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으면서 가정 내 갈등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가 나서서 가해 부모를 교육하고 감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심리적 학대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라고 그는 강조했다.

요코하마=글·사진 손재호 이형민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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