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종합

“촌지부담도 컸는데 스쿨미투까지… 스승의날 없앴으면”



성추행으로 얼룩졌던 학교들 무거운 분위기로 하루 보내
“꽃 한송이 받아도 죄… 개탄” 靑에 ‘스승의 날’ 폐지 청원도
대학생들 종합청사서 기자회견 … 성폭력 가해교수 파면 촉구


학교 내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 이후 첫 스승의 날인 15일. 경기도 H여중·고는 무거운 분위기였다. 교실에서 작은 축하 이벤트가 벌어지고 졸업생도 찾아와 선생님에게 인사했지만 공식 행사는 없었다. 교사도 학생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학교에선 지난 2일 전 교목 K씨(60)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고 성희롱·성추행 의혹으로 고발된 교사 11명 중 절반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국민일보 3월 21일자 10면 참조). 이 학교 졸업생 A씨(19)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학생이 되고 맞는 첫 스승의 날이지만 모교에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며 “선생님을 이전처럼 뵐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졸업생 96명이 교사 4명에게 수시로 성희롱·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도 스승의 날을 조용히 넘겼다.

교사와 교수 처벌을 촉구한 대학생들도 있었다. 서울대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연대와 연세대 A교수 성폭력 대응을 위한 학생 연대체 등 6개 대학 9개 단체 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카네이션을 받을 자격이 없는 스승을 당장 파면하라” “성폭력 가해교수는 스승이 아닌 가해자일 뿐이다”라고 구호를 외치며 성폭력 가해 교수 파면과 처벌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가해 교수 이름이 적힌 카네이션 손팻말을 찢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34년차 교사 손모(57·여)씨는 “일부 교사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전체가 나쁜 교사로 여겨지는 현실이 슬프다”며 “이제는 스승의 날이라는 말조차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했다. 법 시행 이후 두 번째 맞는 스승의 날이었지만 어디까지 선물을 해도 되는지 학부모는 여전히 혼란을 겪었다.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에게는 학생이 카네이션을 주는 것조차 금지됐지만 어린이집 보육교사와 학원 강사는 법 적용을 받지 않아 어떤 선물을 받아도 문제가 없다.

김모(35·여)씨는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의 학부모들과 스승의 날 선물을 논의했다. 돈을 모아 케이크나 쿠키 등 먹거리를 선물하기로 하고 김씨가 대표로 선물을 사서 출근길에 아이를 맡기며 교사에게 전달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근한 김씨는 어린이집 교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몇몇 학부모가 수십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과 향수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해당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지만 “내 아이 돌봐주는 것에 감사해서 전했다” “아쉬우면 당신도 선물하라”는 대답만 들었다. 김씨는 “교사들이 선물의 종류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어린이집에도 김영란법 적용을 바랍니다’는 글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차라리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는 교사의 글도 올라왔다. 자신을 17년차 교사라고 소개한 청원자는 “선생님은 1년에 단 하루,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미는 꽃 한 송이와 편지 한 통을 받아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스승의 날을 5월 1일로 옮겨 다른 직장인들과 같이 쉬게 하자거나 ‘교육의 날’로 이름을 바꿔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손재호 이사야 기자 sayho@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