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어른 돼도 불안·우울·자살충동… 평생 가는 ‘학대의 악몽’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지적 발달이 늦어지기도
학대받은 기간이 짧아도 회복엔 곱절의 시간 필요


다현(가명·24·여)씨는 10년 동안 학대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생을 잘못 돌봤다고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 집안일을 제대로 안 했다고, 맞지 않으려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도 맞았다. 어릴 때는 자신이 잘못해서 당연히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부모라는 존재는 다현씨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때 다현씨는 혼자 원룸에서 지냈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가족 모두 새엄마의 친정에 얹혀살게 됐지만 다현씨는 함께 갈 수 없었다. 이웃들은 어린아이가 혼자 원룸에 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아동보호시설에 신고했다. 그 후 공동생활가정에서 10년을 살았다.

학대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조울증이 심해 며칠씩 밥을 먹지 않고 지냈다. 시설에 들어온 뒤 몇 년간은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누구든 어른을 보면 계모와 아빠가 생각난다”고 하던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했다. 다현씨는 “아버지가 ‘용서해 달라’ 한마디만 해도 풀릴 것 같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다현씨 탓을 했다. 학대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다현씨는 용기를 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땐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때렸다”는 말만 돌아왔다

풀리지 않는 억울함과 증오감이 갈수록 커졌다. ‘그때 나는 맞을 짓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새엄마와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살 충동까지 일었다. 상담치료를 받았지만 분노와 원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지난해 시설에서 나와 자립했지만 자살 충동이 심해질 때면 이전에 머물렀던 공동생활가정의 A원장을 찾아온다.

세준(가명)씨는 12살 때부터 친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다. 어린 시절 세준씨의 얼굴은 흉터투성이였다. 그는 친모와 분리돼 단기 아동보호시설에서 살다 중학교 2학년 때 장기 보호시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또 학대를 당해 어머니에게 돌아갔지만 어머니는 세준씨에게 어떤 관심도 주지 않고 방임했다. 세준씨는 다시 집을 나와 공장에서 일하며 기숙사에 살았다. 성인이 된 세준씨는 지적 발달이 다소 늦었고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다른 사람들보다 심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서적 학대를 수년간 지속적으로 당하면 퇴행행동(나이보다 훨씬 어린 행동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엄마에게 2∼3년 동안 무시 등 정서적 학대를 당한 도현(가명·6)이가 그랬다. 엄마는 옷이나 준비물을 안 챙겨주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준 적이 없었다. 엄마는 도현이와 대화를 할 때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도현이는 그 스트레스로 배변을 가릴 나이가 됐는데도 바지에 오줌을 쌌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음식을 마구 집어먹는 식탐도 부렸다. 친구들에게는 공격적인 행동을 했고 늘 산만했다.

오은영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정서적 학대를 받으면 극도의 스트레스로 지적 발달이 늦어지고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 등이 발생한다”며 “학대받은 기간이 짧아도 회복하려면 곱절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예슬 심우삼 기자 smart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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