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울었던 가족들… 요즘은 숨 좀 쉬고 삽니다”

지난 9일 서울 신길동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 조성원씨(오른쪽)가 20대 여성으로 집안에서만 지내던 최중증 발달장애인 김모씨와 종이접기 놀이를 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서 주 4회, 하루 6시간씩 돌봄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노원구 다운복지관에서 3명의 성인 발달장애인이 사회복지사 1명과 보조교사 2명의 지원을 받으며 수업을 하는 모습. 다운복지관 제공


발달장애인은 평생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학령기까지는 특수학교 등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되면 온전히 가족이 돌봐야 한다. 성인 발달장애인 중 주간보호센터나 거주시설에서 수용할 수 있는 규모는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갈 곳이 없다. 특히 성인 발달장애인 중 ‘도전적 행동’을 보이는 최중증의 경우는 아예 시설에서 받아주질 않는다. 자해나 폭력, 고성 등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협이 될 수 있는 문제적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다 퇴짜 맞고 많이 울었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후 죽 집에서 아들을 데리고 있었다. 어디 한 곳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우리 아들이 자해가 심한 편이다. 대변이나 식사도 혼자 못 하고. 손이 많이 가니까 시설에서는 선생님이 부족하다면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다 퇴짜 맞고 많이 울었다. 어디 한 군데서는 오라고 해서 갔더니 하루 만에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서 지난 9일 만난 정모(54)씨는 울먹이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최중증 성인 발달장애인 박모(23)씨의 어머니다. 그랬던 정씨가 “요즘은 숨을 쉬고 산다”고 한다. 장애인 이용시설인 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서 아들을 맡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은 지난 1월부터 매주 4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등포복지관에 나간다.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1주일에 네 번, 그 시간만큼 숨통이 틔는 거니까. 아들도 집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으니까 좋고. 주위에 보면 아직도 집에 성인 발달장애인들을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다 집밖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처음엔 두려움이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성인 최중증 발달장애인 낮 활동 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챌린지2’라고 명명된 이 사업은 도전적 행동으로 시설 이용을 거부당했거나, 시설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는 성인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장애인복지기관에서 지원하는 첫 시도다. 도전적 행동이란 말은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문제행동’을 대신해 사용하는 말이다. 서울시내 10개 장애인복지관이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한 복지관에서 4명씩 총 40명에게 낮 시간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영등포복지관의 공상길 관장은 “처음엔 이게 과연 가능한 사업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증장애로 인해 어떤 시설에서도 이용을 거부당한 분들이 시범사업 대상이었다”며 “그런 분들을 하루 수백 명이 이용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받아서 적절히 지원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노원구에 있는 다운복지관의 김인숙 관장도 “솔직히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국내 유일의 다운증후군 전문 복지관이지만 최중증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도전적 행동을 보이는 최중증은 여기 선생님들도 처음으로 맞이하는 거였다. 그분들이 낮 활동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여기 이용자들도 그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실제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달라는 민원도 들어오고 그랬다.”

이 일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회복지사가 과연 있을까? 다른 이용자들과 마찰은 없을까? 사고가 나진 않을까? 수많은 걱정 속에서 시작된 사업이었다. 그만큼 모험적인 사업이었다. 어느새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되고 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복지사업은 없었다”

다운복지관에서 챌린지2 사업을 담당하는 임경일 사회복지사는 “도전적 행동이 드라마틱하게 줄었다”고 평가했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 고성을 질러대던 분이 있다. 지금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로 줄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폭력적 행동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혀서 이용을 거부당한 분도 있는데 지금은 우리가 ‘장학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 지낸다. 도전적 행동이란 게 사실 본인의 의사 표현이다. 관심을 요청하고 불편을 호소하는 것이다. 옆에 붙어서 잘 들어주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면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그는 또 “도전적 행동 때문에 그분들이 외부 활동에 제한을 받아온 게 사실”이라며 “복지관에 와서 선생님들과 함께 마트나 영화관, 공원에 가고 지역사회를 이용하게 된 것도 변화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등포장애인복지관의 김수진 성인평생교육팀장은 “그동안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시설 생활에 적응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들도 우리도 집단생활이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면서 “실제로 해보니까 복지관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이용자들도 그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별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자녀 때문에 개인생활을 내놓아야 했던 보호자들도 낮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다운복지관에 다니는 한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아버지가 함께 지하철을 타고 3시간 거리까지 두 차례 왕복하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고 한다. 이 아버지는 아들을 돌보느라 야간에 하는 일만 해야 했다. 아들이 복지관에 다니게 된 뒤로는 주간 정규 일자리를 찾았다.

“이거 끝나면 우리 애는 어디로 가나?”

챌린지2 사업은 초유의 복지사업이다. 도전적 행동을 보이는 최중증 성인 발달장애인을 복지서비스의 영역 안으로 끌어안은 첫 사례다. 장애인복지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실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부나 지자체 예산으로 장애인에 대한 1대1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처음이다.

임경일 사회복지사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케어가 가능한 것은 지원인력 체계가 갖춰졌기 때문”이라며 “1대1, 또는 2대1로 지원하니까 최중증도 충분히 케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1대1 지원사업은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한 복지관에서 4명을 지원하게 하면서 이 사업을 전담할 사회복지사를 2명 배치했다. 여기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보조인력 4명(2명씩 교대근무)이 더 투입된다. 그렇기 때문에 2명의 발달장애인을 사회복지사 1명과 보조인력 1명이 맡아 돌보는 맞춤형 지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운복지관 김 관장도 “선생님 한 분이 2명을 케어한다. 여기에 보조인력 4명이 있다”며 “충분한 인력 지원이 수반되기 때문에 장애인 개인 특성에 맞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고 그 결과로 도전적 행동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시설에서 그동안 최중증을 거부해온 이유도 인력 부족 때문이었다. 사회복지사 한 명이 5∼6명을 지원해야 하는 조건에서 최중증 장애인이 함께 있을 경우 감당할 범위를 넘어선다고 한다.

챌린지2 사업의 지원 대상은 40명에 불과하다. 서울시 거주 19세 이상 최중증 발달장애인 숫자는 77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대다수는 장애인복지 인프라를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부모인 정씨는 “최중중 발달장애인 대상 사업은 챌린지2가 처음”이라며 “학교나 시설이나 어디에서도 1대1로 돌봐주는 곳은 지금까지 없었다. 여기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 사업이 2년으로 끝나면 안 된다”면서 “이거 끝나면 우리 애는 어디로 가야 되냐?”고 걱정했다.

서울시는 내년 7월 시범사업이 끝나면 장애인복지관 10곳을 추가해 지원인원을 2배로 확대할 예정이다. 서울시 복지본부 장애인자립지원과 관계자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누구보다 지역사회의 지원이 필요한 존재”라며 “챌린지2 사업을 통해 이분들이 바깥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함께 지낼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 성과”라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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