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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진달래 물결·노랑 수선화 파도… 화려한 꽃대궐 경남 거제

경남 거제시 장목면과 연초면 경계의 대금산 7∼8부 능선에 군락을 이룬 진달래가 이른 아침 분홍빛을 뿜어내며 황홀한 경치를 펼쳐놓고 있다. 군락지 뒤로 만개한 하얀 벚꽃과 그 너머 파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시원하다. 왼쪽으로 거가대교와 멀리 가덕도도 시야에 잡힌다.
 
수선화와 종려나무가 어우러진 공곶이.
 
천리향 화분을 고르는 강명식 할아버지.


경남 거제의 풍경은 대부분 바다와 어우러진다. 화려한 암봉으로 이뤄진 산도, 형형색색의 꽃도 자체로 매력을 뿜지만 산정에 올라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이 황홀하게 다가온다.

거제는 섬이지만 산이 제법 많다. 남북으로 길게 이은 ‘거제지맥’ 종주코스가 있을 정도다.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최남단 망산(望山)이지만 봄꽃 피는 계절에는 북쪽의 대금산을 따라갈 수 없다.

본래 이름은 대금산(大金山)이었다. 신라시대에 금광굴이 있던 곳이어서 ‘쇠 금(金)’을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쇠 금’자를 사용하면 쇠처럼 강해져 강한 성품의 사람이 나지만 빈곤해지는 대신 ‘비단 금(錦)’자를 사용하면 후대에 큰 인물이 많이 날 것이라는 얘기에 비단 금(錦)자를 사용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대금산은 전남 여수 영취산, 경남 마산 무학산과 함께 국내 3대 진달래 군락지로 꼽힌다. 대금산 자락 7∼8부 능선 부근 바위 사이에 피어오른 분홍빛 진달래 꽃무리와 산허리에 하늘거리는 억새, 산을 배경으로 짙고 푸른 남쪽바다가 대비를 이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면적만 약 10만㎡에 달한다.

대금산 진달래 구경의 최대 장점은 군락지 바로 앞까지 이어진 임도 덕분에 자동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차에서 내려 10여분만 걸으면 군락지에 닿을 수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진달래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다. 들어서면 진달래 터널을 지난다. 울퉁불퉁 바윗길을 지나면 가파른 길에 데크가 놓여 있다. 이곳이 진달래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특히 이른 아침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일출 빛과 연분홍 진달래꽃의 조화는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진달래 군락지 뒤로 만개한 하얀 벚꽃도 보인다. 연분홍과 하얀색이 그림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아침 해가 움직이는 시간에 따라 진달래색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도 이채롭다.

올봄 이상 고온으로 이곳 진달래의 개화 시기가 이른 편이다. 진달래가 없더라도 서운해할 필요 없다. 산 정상에 오르면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은 장대한 바다 풍경이 적잖게 보상해준다. 바로 앞 바다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섬들과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절경을 풀어놓는다. 맑은 날이면 멀리 대마도까지 조망된다.

거리가 짧아 아쉽다면 산행을 즐겨도 좋다. 외포 정류소 바로 앞 외포교 옆에 대금산행 안내판이 서 있다. 골짜기를 따라 곧장 대금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진달래 군락지가 있는 시루봉을 거쳐 가고 싶으면 외포교를 건너 500m 떨어진 상포마을에서 오르면 된다.

거제의 봄꽃을 더 볼 수 있는 곳이 일운면 예구마을의 공곶이다. 지형이 궁둥이처럼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왔다 해서 ‘거룻배 공(鞏)’자와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땅이란 뜻의 ‘곶(串)’자를 합쳐 붙인 지명이다. 찻길이 끝나는 예구마을에서 20분을 산길을 오르고 내리면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봄을 만끽할 수 있다.

공곶이의 대명사는 수선화다. 강명식(87)·지상악(83) 부부가 40여 년 전에 심은 2알의 수선화 뿌리가 계단밭부터 해안 밭뙈기까지 꽃 대궐을 이뤘다. 경남 진주 출신인 강 할아버지가 공곶이와 인연을 맺은 건 1956년. 6·25전쟁 직후 입대해 7년 만에 제대한 뒤 모친의 주선으로 공곶이가 있는 예구마을에 사는 아내를 만났다. 신혼여행으로 찾은 곳이 공곶이였다.

강 할아버지 부부는 이곳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당초 농촌소득증대사업의 일환으로 감귤나무 2000그루를 심었다. 그러나 5년 뒤 1976년 첫 수확을 앞두고 60년 만의 한파로 귤나무는 모두 동사했다. 이후 강 할아버지는 수선화 구근 2뿌리로 꽃밭을 일궜다.

10년이 지나도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수선화가 20년이 지나니 꽃집에 내다 팔 만큼 늘었다. 30년 정도 되니 농장 전체가 꽃밭으로 변했다. 해안가에 핀 아름다운 수선화꽃밭은 거제 8경으로 지정돼 관광객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화장실이나 사진 찍기 좋은 전망대 등 편의시설을 맘대로 지을 수 없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가판에서 화분과 수선화, 채소 등을 판매해 얻는 수익이 전부다.

수선화가 아니어도 공곶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노부부가 40년 동안 쏟아부은 정성이 계단밭 곳곳에 녹아 있다. 주름과 툭 튀어나온 손의 뼈마디로 이뤄진 강 할아버지의 손이 모든 걸 대변해준다. 그 손으로 동백 숲과 종려나무, 조팝나무와 각종 들꽃을 심어 일군 농장 자체가 훌륭한 해안 정원이다.

■ 여행메모
자동차로 진달래 군락지 쉽게 접근
성게·멍게 비빔밥… 알싸한 봄향기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경부고속도로∼통영대전고속도로를 이용해 통영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이후 신거제대교를 건너면 거제에 닿는다. 부산방향에서는 을숙도∼가덕도∼거가대교를 거치면 1시간이면 들어간다.

대금산은 명동5길을 찾아가면 된다. 14번 국도를 이용하다 거제시청이 있는 고현을 지나 1018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연초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가다가 다공중리회관에서 우회전한 뒤 연초호를 지나 명동5길로 접어든다. 대금산 이정표를 따라 포장·비포장 도로를 오르면 진달래 군락지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다. 외포리에서 올라도 된다. 공곶이는 14번 국도를 계속 이어가다 구조라항 가기 직전 와현에서 빠지면 된다.

신선한 바다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성게비빔밥과 멍게비빔밥은 놓치지 말아야 할 먹거리다. 알싸한 향이 강한 멍게와 성게, 참기름, 깨소금, 김가루 등을 넣고 뜨끈한 밥을 비벼 먹는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인근에 있는 백만석식당(055-638-3300)이 유명하다.

묵을 곳으로는 저렴한 유스호스텔부터 고급 펜션까지 다양하다. 바다 전망이 좋은 동남 해변을 따라 시설 좋은 펜션이 들어서 있다. 구조라해수욕장, 학동 몽돌해수욕장 등 유명 해수욕장 부근에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많다.

거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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