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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정체성 회복할 때 물질·권력으로부터 자유”

이상규 고신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7일 부산 영도구 고신대에서 지난 35년간의 교수 생활을 회고하고 있다.
 
이상규 교수가 반평생 재직한 고신대 전경. 왼쪽 아래 교훈 ‘CORAM DEO(하나님 앞에서)’가 새겨진 비석이 보인다.
 
이 명예교수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2010년 찍어준 흑백 사진. 이 교수가 안경을 머리 위에 올려 쓴 채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교회사 연구가 중 한 명인 이상규(66) 고신대 명예교수가 지난 2월을 끝으로 35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반평생 넘는 세월 동안 ‘교회사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그가 남긴 연구 업적을 꿰뚫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개혁주의’와 ‘통합사적 연구’다. 그는 평생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신학에 기초해 개혁주의를 토대로 학문을 연구해 왔다.

그는 자유주의, 무교회주의, 재세례파, 메노나이트 등 다른 신학적 흐름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며 다양한 관점을 익히면서도 개혁주의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서양교회사나 한국교회사 둘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통합사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한국교회 역사의 고유성만 강조하거나 서양교회사의 보편성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며 연구에 매진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7일 부산 영도구 고신대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35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임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1982년 고신대 연구조교로 강의를 시작했고 83년 신학과 전임강사로 신약개론, 복음사, 한국교회사를 가르치면서 교수로 활동했다. 개인적으로 부족한 탓에 학자로서 한길만 가려고 했다. 좋은 선생이 되자는 게 하나님 앞에서 품었던 사명이었다. 그래서 총장 출마하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내 길이 아니라 생각해 가지 않았다. 은퇴 직전까지만 해도 감사하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짐을 다 옮기고 나오니까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면서 울컥했다. 평생 교수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교회사가가 되기로 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명한 교회사가인 민경배 교수가 쓴 문고판 ‘한국의 기독교회사’를 읽었다. 물론 다 읽지 못했고 이해도 못 했지만 교회사 연구에 대해 동기를 부여해준 책이다. 역사를 연구하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도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학부 시절부터 교회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퇴임하면서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할 것 같다. 지난 교수 생활을 자평한다면.

“한국의 선교 역사에서 그동안 미진했던 호주장로교 선교사에 대한 부분을 연구했다. 호주장로교가 특히 부산·경남을 통해 들어왔다. 덩달아 이 지역 교회사 연구도 개척하게 됐다. 또 통합사적 연구를 통해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서양교회의 눈으로 읽고, 서양교회의 유산을 한국교회의 눈으로 살폈다.

한국교회사와 민족만 강조하면 보편성을 상실한다. 반대로 서양 선교사로부터 교회가 전래됐다는 점만 강조하면 한국교회의 특수성을 잃는다. 양쪽을 고루 연구하면서 풍요로운 교회사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아쉬운 부분은 기독교 소수자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퀘이커, 메노나이트, 플리머스 형제교단, 발도파 등을 더 연구할 생각이다.”

-교회사가이면서도 실증사관에 입각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독교인의 역사 이해는 어떠해야 할까.

“먼저 역사가는 당대가 아니라 다음 시대에 학문적으로 정직했다고 평가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8세기 독일 역사학자 폰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중세에는 성자들에 대해 실증적 연구 없이 성스럽게만 말하는 풍토가 있었다. ‘하기오그래피(Hagiography)’라고 한다. ‘하기오’는 거룩하다는 뜻이다. 기독교인은 학문적 도구로서의 실증주의를 중시하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란 관점을 가져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저서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에서 한국교회의 성장주의와 배타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와 해법이 궁금하다.

“기독교인은 기본적으로 순례자다. 이 땅을 지나가는 나그네다. 교회가 나그네 공동체라는 걸 염두에 둬야 물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교회사를 볼 때 4세기 이후 서양교회는 돈과 명예, 권력에 집착하고 이 땅에 영원히 살 것처럼 안주하면서 부패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역시 초기에는 순수했다. 하지만 개발성장시대를 거치며 교회도 성장지상주의에 물들었다. 섬김과 봉사, 이웃에 대한 배려, 죄에 대한 치리 같은 건 무시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 500주년 이후를 얘기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쇄신해야 할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보다 나그네로서의 정체성,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의 회복이 필요한 때다.”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시는 것 같다. 준비된 만큼 쓰시기 때문에 지성과 영성, 그리고 인성을 잘 갖춰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목회자로 자라가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전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하나님께는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는 존경 받는 목회자가 되면 좋겠다.”

■이상규 교수가 남긴 학문적 업적
개혁주의 토대 위에서 교회사 '정립'


이상규 고신대 명예교수는 한국교회사학을 개척한 선구자 격인 민경배 연세대 명예교수의 뒤를 잇는 학자로 평가받는다. 탁월하면서도 성실한 학자인 그는 초기 기독교회사, 16세기 종교개혁사, 개혁주의 신학, 한국교회사, 호주장로교회와 선교사, 부산·경남지방 기독교사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방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지난 2월 은퇴하기까지 25권의 단행본, 170여편의 논문 등을 펴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개혁주의 토대 위에서 교회사를 연구했다. 그가 처음 쓴 책은 '한국에서의 칼빈연구 100년'(1984)이다. 이는 그의 학문적 토대가 '오직 성경으로'를 주창한 종교개혁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2007년에는 '개혁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서양교회사와 한국 지역교회사를 오가는 균형 잡힌 역사 연구도 특징이다. 1997년 펴낸 '교회개혁사'는 16세기 종교개혁사를 기술했다. 1991년부터 신앙잡지 '월간고신'에 4년간 연재한 내용을 모았다. 2004년에는 16세기 이후의 역사를 담은 '교회개혁과 부흥운동'을 출판했다.

2001년 펴낸 '부산지방 기독교 전래사'는 이 교수의 애장서 중 하나로 부산·경남 지방 교회사에 대한 최초 연구 서적이다. 이외에도 2012년 '부산경남지방 기독교회의 선구자들' '한상동과 그의 시대' '주남선과 거창교회' 등 지역교회사 서적을 펴냈다. 또 호주장로교의 한국선교사에 관련된 저서도 다수 집필했다. '왕길지의 한국선교' 'To Korea with Love' 등이 있다.

한국교회사 전반에 대해서는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 '해방 전후 한국장로교회 역사와 신학' 같은 서적이 대표 저서로 꼽힌다.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에서는 일제 강점기 한국 기독교가 민족적 성격을 갖게 된 배경과 교회가 기여한 부분, 신사참배 같은 한계를 살폈다. '해방 전후 한국장로교회 역사와 신학'에서는 한국장로교회 130년 역사에서 장로교회가 남긴 명암과 이합집산, 민주화와 통일운동사에 미친 영향 등을 소개했다.

부산=글·사진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이상규 교수 약력 △고신대 신학과 △고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신학 석사 △호주신학대학 신학 박사 △고신대 신학과 교수 △고신대 부총장 △개혁신학회 회장 △한국장로교신학회 회장 △국제신학저널 Unio cum Christo 편집위원 △2012년 요한칼빈탄생500주년기념사업회 선정 올해의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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