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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62년 연기 인생, 조금의 후회도 불행도 없어” [인터뷰]

7년 만의 주연작 ‘덕구’로 관객을 만나는 배우 이순재. 그는 “요즘 심금을 울리는 영화가 별로 없는데 ‘덕구’는 우리의 정적인 감성을 촉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덕구’에서 덕구 할배(이순재)가 절절하게 손자를 끌어안고 있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홀로 손주 둘 키우는 할아버지
“돈 이상의 가치 있는 작품”
연기에 있어 완성이란 없어
항상 더 높은 경지가 있거든


“에이, 촬영은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오히려 신이 났지. 좋은 작품을 만났으니 좋은 연기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있으니까.”

62년 세월을 오롯이 쏟아붓고도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모르는 대배우의 연기 열정이란. 새 작품을 내놓은 이순재(84)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 배어났다. 100편 이상의 영화, 120편이 넘는 드라마, 그리고 수십여 편의 연극에 출연한 그에게 연기는 여전히 ‘신나는’ 일이다.

오랜만에 주연을 맡았다. 영화로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이후 7년 만. 5일 개봉한 ‘덕구’에서 어린 손주 둘을 홀로 키워내는 할아버지를 연기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순재는 “(이제 내가) 주인공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다. 한 장면 나오더라도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이 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돈 이상의 가치가 있어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극 흐름이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연기를 하다 보면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억지스러운 작품이 많거든. 근데 이 영화는 울림이 있었어요. 사람 사는 얘기를 참 정감 있게 풀어냈더라고.”

극 중 이순재가 연기한 배역엔 이름이 없다. 손자의 이름을 따라 ‘덕구 할배’라 불릴 뿐이다. 식당에서 불판을 닦거나 공병을 주워다 팔아 받은 돈으로 손자 덕구(정지훈)와 손녀 덕희(박지윤)의 뒷바라지를 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고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이 이야기에 가슴이 저미는 건 순전히 배우의 힘이다. 이순재의 표정과 몸짓을 타고 저릿한 감정이 전해진다. “배우는 세 가지 유형이 있어요. 작품보다 잘하는 배우, 작품만큼 하는 배우, 작품보다 못하는 배우. 어떻게든 작품보다 잘 해내야 해. 그래야 창조성과 예술성이 나오게 되지.”

일찍이 할리우드 영화에 매료됐던 이순재는 서울대 철학과 3학년 재학 당시 친구들을 모아 연극반을 재건했다. 그때 무대에 올린 연극 ‘지평선 넘어’(1956)가 그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국내 대중문화계의 성장과 발걸음을 함께해 온 그는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후배들은 나보다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지. 90세까지도 거뜬할 걸? 자기관리만 잘하면 되는 거예요. ‘적당히 촬영장 왔다 갔다 하면서 용돈이나 얻어 쓰자’는 생각을 가지면 틀려먹은 거지만. 무엇보다 젊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해야 해요. 나이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점점 기회가 없어지죠.”

중견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순재는 “반짝했다 사라지는 배우들을 숱하게 봤다.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건 연기의 기본이 돼 있다는 얘기”라며 “신구 최불암 김용건 나문희 김혜자 강부자 같은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면 틀림없이 작품에 보탬이 된다. 역량과 책임의식을 갖춘 이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순재의 필모그래피는 거침없이 쌓여간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지난해 ‘세일즈맨의 죽음’부터 네 편의 연극을 연달아 공연했고, 그사이 영화와 드라마, 예능에도 출연했다. 가천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기도 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느냐고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있으니까.” 이순재는 “연기에 완성이란 없다. 높이 올라가도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든지 더 높은 경지가 있다”고 얘기했다.

오로지 연기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62년. 스스로를 돌아보면 “후회는 없다”고 했다. “물론 중간중간 어려움은 있었죠. 그렇지만 처음부터 각오했던 거니까 (문제없어요).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 난 조금도 불행함을 느끼지 않았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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