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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온 딸들을 위하여… 미소 잃지 않는 컬링 싱글맘



캐나다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마리 라이트(58·여·사진)는 경기 중에도 ‘레츠 고 캐나다’를 외치는 관중석으로 몸을 돌려 자주 손을 흔든다. 투구 속도 측정을 위해 초시계를 들 때에는 심각한 표정이지만, 동료가 일단 샷을 날린 뒤엔 무조건 미소를 보낸다.

라이트가 웃는 얼굴로 관중석을 자주 돌아보는 이유는 장녀 키라와 차녀 타라가 자신을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도 없이 키워낸 딸 넷 중 둘이 어머니를 응원하러 한국에 와 있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걸 보면 더 힘을 내게 됩니다. 딸들은 내게 온 세상과 같아요.”

라이트는 28세 때였던 1988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캄캄한 시골길, 앞서가던 대형 트럭이 아무런 신호 없이 갑자기 멈춰섰다. 핸들을 꺾었더니 자동차가 도랑으로 굴러 떨어졌다. 차 안에는 라이트뿐 아니라 갓난아기 막내딸인 레이첼도 타고 있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레이첼은 지금 라이트처럼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1년여간 입원한 뒤 퇴원했지만, 라이트에게는 또다시 비극이 찾아왔다. 남편이 떠난 것이다. 라이트는 삶을 포기하려다가 ‘내게 4명의 딸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때로는 딸들과 부둥켜안고 우는 날도 있었지만, 다음 날이면 먼저 밝아지자고 자신을 추슬렀다. 미소를 잃지 않는 건 장애 이후 생긴 버릇이다.

라이트의 긍정 에너지는 스포츠가 준 활력이기도 하다. 사고 전 아이스하키팀의 골리로 활동했던 라이트는 2009년 49세의 나이로 하키 스틱 대신 브룸을 잡았다. 지역 휠체어컬링 팀의 감독이 “휠체어컬링은 혼성팀이 규칙이다”며 라이트를 집요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휠체어컬링이었지만, 8년 만인 지난해 그는 당당히 캐나다 국가대표가 됐다.

강릉컬링센터를 찾는 라이트의 두 딸은 “엄마는 우리의 코치였고, 슈퍼우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어딘가에 여러분을 도울 뭔가가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강릉=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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