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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안 먹고 지옥훈련… ‘오벤저스’가 탄생했다

김석현 휠체어컬링 대표팀 트레이너가 지난 14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오벤저스’가 호성적을 내고 있는데 도움이 된 각종 훈련 기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강릉=최현규 기자


구부러진 자세 바로잡고 2시간30분 이상 버틸 체력·몸 균형 감각 키워
정해진 음식만 섭취하고 “경기가 역사 된다” 되새겨


별로 힘들이지 않고 편안히 앉아 스톤을 민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고 혹독한 지옥훈련을 거쳤다. 추운 경기장에서 2시간30분 이상 버틸 수 있는 체력, 스톤의 섬세한 움직임을 조절할 몸의 균형이 필요했다.

‘오벤저스’를 3년간 지도해온 김석현 휠체어컬링 대표팀 트레이너는 15일 “나는 그동안 ‘악마 트레이너’라 불렸다”며 웃었다. 백종철 감독도 “선수들이 트레이너에게 뭐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준비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오벤저스’의 고된 훈련 과정을 짐작할 만하다. 앞쪽으로 구부러진 자세와 구부정한 어깨를 바로잡는 일이 김 트레이너의 급선무였다. 그는 “기본이 된 뒤에야 기능적 동작을 한다”며 “예외 없이 FM(교범)대로 했다”고 말했다.

다리의 역할을 팔로 대신하는 선수들은 상지근력, 근지구력, 유연성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휠체어를 탄 채 전력질주를 했고, 김 트레이너가 하체를 붙잡아준 상태에서 턱걸이를 했다. 손가락을 고무줄로 칭칭 감은 뒤 펴는 연습까지 거쳤는데, 이는 손가락 사이의 ‘내재근’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김 트레이너는 “투구할 때 딜리버리 스틱을 잡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1∼2개월마다 분당 덤벨 컬, 휠체어 이동 속도, 신체유연성 등을 진단받는 체력검정을 거쳤다. 생소한 훈련들에 처음에는 선수들도 어려움을 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로 설명된 신체 상태를 확인한 뒤에는 다시 운동에 집중했다. “8개밖에 못 하던 턱걸이가 12개까지 늘었다”며 기뻐한 선수도 있었다.

‘오벤저스’는 몸을 푸는 과정도 특별하다. 5명이 서로를 마주 본 채 2개의 공을 무작정 주고받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던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공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몸의 움직임은 자연스레 상하좌우로 커지게 된다. 몸풀기 운동을 놀이처럼 만든 건 김 트레이너의 노하우다. 처음엔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동작을 힘들어하던 선수들도 몸이 유연해지자 점점 즐거워했다.

‘오벤저스’는 3개월 넘도록 라면을 먹지 않았다. 선수들의 식단을 관리하는 김 트레이너가 금지령을 내린 음식이 바로 라면이다.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고 술을 끊은 선수도 있다. 뷔페식인 선수촌 식당에서 선수들은 김 트레이너가 정해준 것만 섭취한다. 김 트레이너는 “짜고 달고 매운 음식을 피하도록 했다”며 “이제는 선수들이 먼저 음식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고 했다.

선수들이 경기 휴식시간에 섭취하는 간식도 과학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김 트레이너는 “움직임과 집중을 돕기 위해 에너지를 주면서도 흡수가 빠른 것을 선택했다”고 했다. 선수들은 고체로는 초콜릿, 액체로는 투명 용기에 담긴 ‘파워 겔’을 먹는다. 운동 시 소모되는 에너지를 빨리 보충해주는 것들이다.

고된 준비의 결과는 경기력으로 증명되고 있다. 모든 국가의 휠체어컬링 선수들이 1일 2경기의 일정을 힘겹게 여겼다. 한국 선수들도 수면부족 문제 등을 겪었지만 이날 예선 1위로 4강 진출을 확정했다. 백 감독은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김 트레이너는 선수들에게 “여러분의 경기가 개인의 역사는 물론 국가의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경기가 열릴 때면 관중석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사람이 바로 김 트레이너다. 정작 그는 “나는 그림자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강릉=이경원 기자

사진=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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