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왕의 여자’로 그치지 않고 ‘왕의 어머니’가 된 후궁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가 상체를 드러낸 채 목욕을 하던 중 다윗의 부하로 보이는 왼쪽 남성에게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림 왼쪽 위로는 왕궁 옥상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다윗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Web Gallery of Art 제공
 
침상에 누워 있는 아기(왼쪽)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밧세바(왼쪽 두 번째).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첫 번째 아기로 출생 7일 만에 죽고 만다. Web Gallery of Art 제공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밧세바가 다윗(오른쪽)을 향해 솔로몬이 왕위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서 있는 남성은 밧세바의 간청을 거드는 나단 선지자로 보인다. 나단 선지자 오른쪽으로는 늙은 다윗의 수종을 드는 수넴 여자 아비삭. Web Gallery of Art 제공


권력자와 아름다운 여성

하나님이 택한 왕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던 다윗도 한 여자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윗은 평생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다윗과 밧세바 사건 속에는 영웅을 지배하는 여성성의 위력이 숨어 있다. 이 사건은 삼손을 몰락시킨 들릴라의 사건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사람도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무너질 때 인간의 역사가 왜곡될 수 있음을 깨우치게 만든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민족은 왕국의 토대를 확립하는 과정에서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주적은 블레셋과 암몬 등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초대 왕 사울은 그의 교만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뒤이어 목동 출신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졌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왕권은 안정되었고 백성으로부터 신망도 받게 된다. 그즈음 권력자 다윗 앞에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가 등장한다.

다윗의 씨를 잉태한 밧세바

요압 장군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해 봄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군 지휘 통솔권을 부여했다. 그래서 다윗은 전선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 궁전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초저녁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깬 다윗은 왕궁 옥상에 올라갔다. 그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요압 장군과 부하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궁궐 옆 건물 욕실에서 목욕하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치지 않는 전쟁 탓에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여자를 통해 얻는 즐거움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윗은 자신이 전쟁을 치르는 왕임을 순간 잊고 말았다.

왕궁 집무실로 돌아온 다윗은 신하를 불러 여인의 정체를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신하는 그 여인이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라 보고했다. 우리아는 요압 장군의 부하였다. 왕은 밤중인데도 밧세바를 궁으로 불러들여 정을 통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인은 다윗의 씨를 잉태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당황했다. 비로소 자신의 처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그의 부하 우리아 장군을 궁으로 소환했다. 밧세바가 휴가차 돌아온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하도록 해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다윗은 궁으로 돌아온 우리아에게 전쟁 상황을 묻고 노고를 치하했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며칠 쉬도록 허락하고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우리아는 귀가하는 대신 대궐 문 앞에서 잠을 청했다.

다윗이 그 까닭을 물었다. 우리아는 “지금 전선에서는 모든 군사들이 적과 대적하고 있는데, 나만 집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잠을 잘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나서 다윗은 우리아를 전선으로 보내면서 그의 상관인 요압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아를 최전방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 싸우도록 해라.’ 우리아는 결국 전사한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 밧세바까지 빼앗아 후궁으로 삼았다.

후궁 밧세바의 정치력

선지자 나단이 이 사건을 알고 다윗을 책망하자, 다윗은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한다. 그러나 다윗의 회개로 마무리될 수 없었다. 나단은 앞으로 다윗에게 닥칠 엄청난 재앙을 예고했다. 그중 하나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난 자식을 하나님이 거두신다는 것이었다. 예언대로 밧세바 몸에서 난 다윗의 아들은 열병을 앓는다. 다윗이 금식하면서 기도했으나 결국 죽고 만다. 이어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솔로몬이 태어난다.

다윗과 아들들의 관계는 험악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과 갈등을 빚어 혈투를 벌이다 결국 압살롬이 죽는다. 다윗이 늙어 왕권을 물려줘야 했을 때도 사건이 터진다.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세력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압살롬의 동생인 아도니야는 용모도 뛰어나고 정치력도 출중해서 당시 세력자인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포섭했다. 그는 형제들과 지지자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면서 세력을 강화했다. 이미 대세는 아도니야로 기울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밧세바는 나단 선지자와 함께 야밤에 다윗 침실로 들어갔다. 다윗은 늙어서 수넴 여자 아비삭의 수종을 받고 있었다. 밧세바는 다윗에게 예전에 한 약속을 환기시키면서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지하도록 강권한다. 결국 밧세바는 다윗으로부터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약속받는다. 결국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다.

다윗의 후궁이었던 밧세바의 정치력이 발휘된 것이다. 다윗의 여자로 만족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이 국왕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유력한 제사장을 비롯해 나단 선지자와 많은 지지자를 확보했다. 후궁의 아들인 솔로몬은 당시 상황으로 짐작해볼 때 아도니야와 대결해 이길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왕이 된 것은 밧세바의 책략이 통했기 때문이다.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단초

다윗 왕가를 계승한 솔로몬은 강력한 이스라엘 왕국을 이룩한다. 성전을 건축했고 중동 국가들 중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그의 대(代)가 끝나면서 왕국은 남북으로 갈라진다. 이 분단의 씨앗은 이미 다윗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밧세바와의 불륜이 단초가 됐다.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법대로 통치하는 왕조차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특히 한 여자를 향한 욕망 앞에서 갈 길을 잃게 되는 남성의 연약함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 이렇게 볼 때 여성의 성은 피상적으로는 남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론 남성을 굴복시키는 막강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이는 남녀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힘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단적인 예가 되기에 충분하다. 세기의 수많은 정치적인 사건과 역사 현장, 심지어 문학과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윗 같은 권력자와 밧세바 같은 여성이 종종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가.

글=현길언 작가 (계간 ‘본질과 현상’ 발행·편집인, 서울 충신교회 은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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