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삼손 무너뜨린 들릴라, 남성을 지배하는 여성의 표본

들릴라의 무릎 위에 널브러져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삼손. 여성의 힘에 지배당하는 남성의 연약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블레셋 사람으로 보이는 남성이 ‘힘의 원천’인 삼손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오른쪽 문 뒤엔 삼손을 붙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블레셋 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Web Gallery of Art·National Gallery of Art 제공
 
무장한 블레셋 군인들이 힘을 잃은 삼손의 눈알을 뽑으려 하고 있다. Web Gallery of Art·National Gallery of Art 제공
 
이방 신전의 두 기둥을 무너뜨리면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최후를 맞는 삼손의 모습. Web Gallery of Art·National Gallery of Art 제공
 
현길언 작가


‘하나님의 사람’ 삼손의 탄생

들릴라는 천하의 장사를 성(性)으로 정복한 여성의 전형이다. 그녀가 무너뜨린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삼손은 힘과 민족적 의협심을 지닌 사나이였다. 그런데도 한 여인 앞에 무력하게 무너졌다.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는 남성의 관능적 욕망의 실체와 더불어 여성의 성적 위력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한 행동을 일삼았다. 그들은 가나안의 여러 이방 족속의 딸들을 취해 아내로 삼았다. 심지어 이방인들이 추앙하는 신까지 섬기는 죄악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게 하신다.

삼손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녀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허락할 것이다. 그 아들은 머리를 삭도로 밀어선 안 된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어난 삼손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를 받고 자랐다. 그는 애초부터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내기 위해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었다.

삼손과 블레셋 여인들

어느 날 딤나로 내려간 삼손은 블레셋 처녀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 여자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부모에게 간청했다. 삼손의 부모는 극구 반대했지만 삼손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블레셋 청년들은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삼손과의 관계를 끊도록 했다. 그럴 때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력으로 복수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증오하면서 기회를 노리던 중 삼손을 붙잡기 위해 유다 사람들이 사는 땅에 쳐들어왔다.

이에 놀란 유다 사람 3000명은 에담 바위틈에 있던 삼손을 찾아갔다. 이어 삼손의 양해를 구해 그를 밧줄로 묶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기려 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했다. 삼손은 결박돼 있던 밧줄을 끊고, 당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였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로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삼손은 가사 지방에 들렀다가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이 사실을 접한 블레셋 군대들이 그를 기다리다가 죽이려 했지만 그 계략도 실패한다. 삼손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들릴라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그 소문이 블레셋 지방 전역에 퍼졌다. 블레셋 왕은 들릴라에게 사람을 보내 삼손을 꾀어내도록 회유했다.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그를 결박해 굴복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면 은 1100개를 준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품에 안긴 영웅의 몰락

들릴라는 이런 제안에 솔깃했다. 그래서 삼손을 여러 번 보챘다. 삼손은 들릴라가 사랑스러웠지만 그의 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들릴라는 화가 났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군요.”

이 한마디에 삼손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누설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내 머리를 깎아버리면 나는 힘을 쓸 수 없소.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기 때문에 머리를 깎지 않고 살고 있소.”

밤이 깊었다. 삼손은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깊은 잠이 들었다. 그 사이 들릴라는 사람을 시켜 삼손의 머리를 말끔히 깎아버렸다. 이어 숨어 있던 블레셋 군사들이 들이닥쳐 삼손을 결박했다. 삼손은 힘을 써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두 눈을 뽑았다. 그리고 쇠사슬로 그를 묶어 감옥에 가둔 뒤 연자 맷돌을 돌리게 했다. 삼손은 들릴라를 원망했지만 소용없었다. 여자에게 빠져 하나님께 바쳐진 자신을 내팽개친 어리석음에 통탄했다.

세월이 흐르자 삼손의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힘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블레셋 왕은 그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도록 했다. 삼손은 하나님께 간구했다.

“저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딱 한 번만 제게 힘을 주시면 저들을 복수하고 함께 죽겠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신전에 모인 사람들 앞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인 장사 삼손을 보고 조롱하며 즐거워했다. 그 자리엔 삼손의 모습을 보려고 3000명이나 몰려들었다. 삼손은 신전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을 양 손으로 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굽혔다. 신전이 무너져 내렸다. 블레셋 왕과 고관 등 신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했다. 삼손도 죽었다.

남성을 지배하는 여성의 힘

삼손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고 그분의 섭리로 태어났다. 하나님의 일꾼 ‘나실인’으로 택함 받은 그였지만 여인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는 남성을 지배하는 여성의 힘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최초의 남자 아담도 하와가 준 선악과를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경건한 생활을 하던 아브라함도 사라의 질투 앞에서 몰인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여성 앞에서 남성은 마치 유아기 때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변할 때가 있다. 아기는 유약하고 순진하다. 어머니를 믿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모성(母性)을 지닌 여성성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징은 논리 이전에 남성과 여성의 본성을 드러내는 문제다.

여성은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데 있어서 현실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삼손의 첫 번째 부인 딤나의 여인이 그렇고, 두 번째 만난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삼손의 소재를 귀띔해줬을 것이다.

들릴라는 ‘은 1100개’라는 돈으로 삼손을 팔아넘기는 데 집요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택한 민족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은 그녀에게 푹 빠져 벗어날 줄을 몰랐다. 하나님이 택한 나실인이 하나님보다 여인의 품을 더 좋아하는 유약함을 그녀는 어떻게 여겼을까.

인류의 역사 속에서도 남성 위에 군림한 여성, 여성에 굴복해버린 남성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역사를 움직이는 건 남성이지만 남성을 지배하는 것은 여성이다.’

글=현길언 작가 계간 ‘본질과 현상’ 발행·편집인 서울 충신교회 은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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