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하나님의 계시로 장자계승권 빼앗는 母性의 선택

①사냥을 다녀와 허기진 에서(오른쪽)가 동생 야곱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②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넘기겠다고 약속한 에서(오른쪽)가 야곱으로부터 떡과 팥죽을 건네받고 있다. 어머니 리브가는 둘 사이에 서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③이삭이 에서로 변장한 야곱(아래)의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축복기도를 하고 있다. 야곱은 에서처럼 꾸미려고 형의 옷을 입은 데 이어 오른손에는 털 달린 염소 새끼 가죽을 둘렀다. 에서의 장자권을 뺏기 위해 야곱과 공모한 리브가(오른쪽)는 오른쪽 검지를 입술에 들어 올리며 야곱을 향해 모른 척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Web Gallery of Art 제공
 
현길언 작가


창세기에서 다뤄진 이삭의 일생에 대한 기록은 간소하다. 그가 태어나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포함돼 있다.

또 이삭이 에서와 야곱을 낳은 후의 사건들은 야곱의 일생에 포함돼 있다.

이삭이 리브가 택하는 과정 상세히 기록

성경에서 이삭의 생애를 독립적으로 다룬 부분은 매우 짧다(창 24, 2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택하는 과정(창 24:1∼6)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 24:2∼4)

현장성을 가미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같은 기술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리브가가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임을 부각 시키고 있다.

리브가는 나홀과 밀가의 아들인 브두엘의 딸이다. 즉 아브라함 제수의 손녀로 이삭과는 5촌 조카지간이다.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은 늦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이삭의 짝을 고향에서 구하려고 종을 보내 친척의 딸을 맞아들인다. 이삭은 마흔 살에 늦장가를 갔다. 자식을 얻지 못하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이삭의 기도를 들으시고 쌍둥이 아들을 허락하셨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 역시 하나님과 소통하는 여자였다. 쌍둥이 태아가 뱃속에서 심하게 싸우자 리브가는 “내가 어찌 할꼬”라며 하나님께 여쭤봤다(창 25:22). 리브가는 그 때 하나님으로부터 쌍둥이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이렇게 리브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이자 하나님이 택한 여자였다. 그렇지만 리브가는 세상의 질서를 거역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자식을 편애한 어머니, 리브가

리브가는 매우 예뻤다. 그래서 이삭이 그랄에 머물러 살 때, 어여쁜 아내 때문에 행여 위험에 처할까봐 리브가를 누이라 속이고 지냈다. 그것은 리브가도 양해한 일이었다(창 26:6∼7).

하지만 이 사건은 앞서 아브라함이 흉년으로 인해 이집트로 이주해 갔을 때 벌어진 사라와의 약속을 연상케 만든다(창 20장).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는데,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빼앗는 일이 있었다.

사라나 리브가도 매우 예뻤기 때문인데, 공연한 위기의식은 도리어 남편에게 화근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처지라면 아내의 미모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라나 리브가를 노리는 사내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결혼한 지 20년 만에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이삭의 나이 예순 때였다. 쌍둥이는 태중에서부터 심하게 다퉜는데, 세상에 태어나서도 둘 사이의 기질과 성격은 많이 달랐다. 형 에서는 사냥꾼이 되어 들판을 누비고 다녔다. 아버지 이삭은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즐겼기에 에서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 동생 야곱은 차분한 성격이었다. 주로 집안에서 생활했던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형의 백성이 동생의 백성을 섬길 것이다.’ 만약 야곱이 장자(長子) 민족이 되려면 아버지를 계승할 수 있는 장자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땅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리브가는 집에서만 지내는 야곱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활달하고 남성적인 장남 에서보다는 차남 야곱이 더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야곱이 동생으로 태어난 것이 안타까웠다. 이같은 리브가의 마음은 야곱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야곱도 아버지 대(代)를 이어 하나님이 택한 민족의 중시조(中始祖)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야곱과 함께 장자권을 빼앗는 리브가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형 에서는 배가 무척 고팠다. 에서는 야곱으로부터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고서 장자권을 동생에게 넘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과 동생의 약속일 뿐이다. 장자권은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삭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둡고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집에서만 지내는 상황이었다. 리브가는 야곱이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어느 날 이삭이 장남 에서에게 말했다.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 이야기를 듣는 이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리브가였다(창 27:4).

에서는 사냥을 하기 위해 들로 나갔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이삭과 에서 사이에 있었던 대화 내용을 전하면서, 동생이 형 대신 축복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리브가는 집에 키우는 어린 양을 잡아다가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었다. 리브가는 또 에서가 잘 입는 털가죽 옷을 야곱에게 입혔다. 즉 몸에 털이 많은 에서처럼 변장한 것이다.

이삭은 야곱의 목소리에 다소 의심을 하면서도 눈이 멀어 분별하지 못했다. 또 털이 많은 손을 만지면서 에서라고 여기게 된 이삭은 결국 야곱을 축복해준다.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9)

모자(母子) 공모로 ‘장자 계승’ 틀을 깬 여성

리브가의 치밀한 계획대로 야곱은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챈다. 나중에 에서가 이 사실을 알고 이삭에게 항의하며, 동생에게 베푼 축복을 거둬달라고 요청하지만 허사였다. 이 사건으로 형의 미움을 받은 야곱은 집을 떠나 나그네 길에 오른다.

형제의 불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흔한 전형적 사건이다.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여성인 리브가가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역사의 순리이지만, 이를 땅의 질서로 고정시키는 데 있어선 여자의 일탈적 행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장자를 좋아한다. 장자에게 집안의 대를 물려주는 건 보편적이다. 이는 가족 간에 형성된 권력의 논리인데 이 또한 보편적이다. 그런데 리브가는 보편적 권력 의지를 뒤엎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간이 원하는 장자 계승의 권력 구조가 아닌, 차자(次子) 계승권도 허용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논리다. 이것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리브가의 선택이 작용했다. 아들과 어머니가 공모해 아버지를 거역하는 모티브는 낯설지 않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세계 신화의 일반적인 모티브라는 점에서 리브가의 선택은 인류 보편적 의미를 갖게 된다.

글=현길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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