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3편>] 英 종교개혁은 위로부터 시작… 권력·사욕에 따라 격랑
영국 옥스퍼드의 막달렌 스트리트에 설치된 순교탑 모습. 토머스 크랜머, 휴 라티머, 니콜라스 리들리의 순교를 기념해 세웠다. 이들은 모두 ‘피의 여왕’이라 불렸던 메리에게서 화형을 당했다.   크랜머가 화형 당했던 장소.   영국의 종교개혁은 왕과 성직자들에 의해 주도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수장령을 선포한 헨리 8세(왼쪽)와 순교자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   고성삼 목사 왕이 주도한 개혁 영국 종교개혁의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루터와 칼뱅 등이 이끌었...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3편>] 성경을 유일한 권위 삼아 중세교회 잘못된 권력에 맞서
존 위클리프는 14세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로 사역하며 종교개혁의 선구적 역할을 감당했다. 위쪽부터 현재 옥스퍼드대 전경. 위클리프 기념관인 위클리프홀(Hall). 윌리엄 틴데일이 1526년 독일의 보름스에서 인쇄한 영어 신약성경. 이 성경은 영국 런던의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에 소장돼 있다.   존 위클리프   고성삼 목사 제3편 ‘오직 믿음으로’를 시작하며 종교개혁에서 믿음의 불시험을 통과한 자들만 ‘개혁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필자는 ‘오직 믿음으로’ 주를 따르며 말씀을 사랑했던...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아이들의 큰 그늘 되다, 예수 마음으로
작가 이오덕은 생의 마지막 시기를 충북 충주시 무너미마을에서 보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뒤편으로 그가 살던 아담한 돌집이 있다.   이오덕의 돌집, 아들이 기거했던 집으로 현재는 이오덕의 제자가 머물며 글을 쓰고 있다. 이름은 시집 '까만새' 표지에서 발췌한 친필이다(위에서 부터).   농촌아이들의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사꾼이 되겠지'와 육필원고, 경북 청송 화목교회, 회목초등학교 전경(위에서 부터).   젊은 시절의 이오덕(왼쪽)과 권정생. 권정생이 혼자 기거하던 경북 안동시 일직교회 앞에서 두 사람이 함께 했다. 양...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예수님 자리’를 우상과 인간으로 가득 채운 중세 성당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있는 세 개의 문중 하나인 ‘심판의 문’.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내면 천국에 간다는 것을 저울로서 묘사하고 있다. 반면 종교개혁가 장 칼뱅 생가에 있는 ‘성경의 무게’ 판화는 그 어떠한 것도 성경보다 의미 있고 무거운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랭스 대성당의 돌로 부조된 괴물들. 악귀가 성당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부적 같은 의미다.   서대천 목사 종교개혁의 흔적을 찾아 나선 영성답사가 감격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감동과 희열이 넘쳤지만 고통...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한국교회, 웨슬리처럼 헌신하는 주님의 종이 나와야 한다
1720년대 말 영국 옥스퍼드대 링컨 칼리지의 존 웨슬리 방에서 시작된 홀리클럽운동 모임 광경.   지금의 링컨 칼리지 전경으로 웨슬리는 이곳에서 교수급 특별연구원인 펠로우로 10여년간 재직했다.   존 웨슬리의 신성구락부 출발점이 되었던 옥스퍼드성(城) 감옥 전경.   서대천 목사 필자는 웨슬리가 공부하고 사역한 옥스퍼드대에 가서 옥스퍼드 성(城)에 관심을 가졌다. 웨슬리가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를 졸업한 이후 1726년 링컨 칼리지 특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시작한 ‘홀리클럽운동’이 바로 이 성의 재소...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명랑한 찬송가, 풍금 소리를 추억하다
김동리는 이따금 평생 친구인 박목월 시인과 경주 황성공원을 거닐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황성공원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와 시인이 문학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생각의 숲이었다.   소설 속 모화가 ‘예수가 진짜인지’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굿을 하다 죽는 곳으로 그려진 예기소 현재 모습. 경주 서천과 북천, 남천이 합류하면서 소용돌이가 생기고 파져 깊은 소가 생겨났다고 한다.   작가가 태어나 자란 경북 경주시 성건동 옛 집 터.   김동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웨슬리, 성결운동으로 ‘거룩한 나라, 영국’ 꿈꿨다
존 웨슬리의 출생지인 영국 동북부의 엡워스 생가.   웨슬리가 11세부터 6년간 엄격하게 신학의 기초과정을 배웠던 런던의 차터하우스 스쿨.   옥스퍼드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전경.   존 웨슬리   웨슬리가 1738년 5월24일 저녁 모라비안 집회에서 회심을 경험한 올더스게이트 현장. 존 웨슬리를 찾아 도버해협을 건너면서 필자는 역사가 필립 샤프가 한 말을 떠올렸다. “칼뱅 사후에 존 웨슬리보다 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면서 사도적인 전도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둔 인물...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루터보다 6년 앞서 부패한 교황권을 신랄하게 풍자
1516년 에라스무스가 출판한 헬라어 신약성경.   에라스무스의 초상화.   권위주의와 형식주의로 전락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실상을 대담하게 묘사했던 ‘우신예찬’ 표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성로렌스성당앞에 설치된 에라스무스 동상.   서대천 목사 16세기 종교개혁은 지성계의 인문주의운동과 예술계의 르네상스운동의 연동관계 속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 중세의 오랜 영적 암흑기 끝자락에서 연쇄적으로 촉발된 것이다. ...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불신·분열 시대, 나의 해방촌은 어디인가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의 배경은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해방촌’이다. ‘실향의 공간’ 해방촌이 주는 공간적 의미는 회복이다. 작가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작가적 양심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 했다. 해방촌오거리에서 후암동 마을버스 종점으로 내려가는 골목길.   해방촌의 상징이 된 ‘108하늘계단’은 두 길로 나뉘어 가운데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후암동 마을버스 종점 로터리에서 바라본 ‘108 하늘계단’.   해방촌엔 장기체류 외국인과 젊은이들 발길이 늘어가고 있다. 이주민에 의...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칼뱅 개혁사상 위그노가 삶에서 실천… 세계의 변화 이끌어
위그노 화가였던 프랑스와 뒤부아가 1572년 발표한 ‘성 바돌로매 축일 대학살’ 그림으로 당시 위그노 박해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았다.   스위스 로잔의 위그노 신학교 전경.   앙리 4세가 1598년 4월 13일 선포한 낭트칙령. 칼뱅의 개혁사상 중심에는 ‘경건과 지식’이 있다. 참된 신앙인은 올바른 경건과 올바른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제3권 2장은 “믿음은 소위 경건한 무식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에 근거한다”고 밝혔다. 위그노들은 이러한 경건과 지식을 추구한 최고...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오직 그리스도’ 향한 순교자들 믿음이 종교개혁 이뤘다
1562년 3월 로마 가톨릭주의자인 기즈 가문이 예배를 드리던 위그노들을 총과 칼로 죽이며 화형을 시켰던 곳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바시의 노르트담 성당.   당시 위그노들을 처형했던 바시의 곡물창고.   파리 노르트담 대성당 부근의 위그노 처형 장소. 필자는 프랑스의 위그노 수난 현장을 답사하면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한 테르툴리안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가 살아서 사도행전 28장 이후를 쓰고 있는 것도 그때 목숨 걸고 복음을 사수한 신앙의 선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그노 최대 순교지인 ...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향수, 시·노래로 열매 맺다
황해도 황주가 고향인 박화목 시인의 작품엔 실향민의 정서가 담겨있다. ‘과수원길’ 역시 고향 과수원길을 생각하며 쓴 시다. 사진은 9월의 가을 햇살을 머금고 있는 서울 태릉 과수원의 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김보연 인턴기자   홍제근린공원 언덕위에 세워진 ‘과수원길’ 시비. 아래는 첫 동시집 ‘초롱불’.   홍제근린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옛 문화촌 마을, 홍제3동 초입에 있는 문화공원과 서울 홍성교회(왼쪽부터).   박화목 고향은 누군가에겐 어머니이고 사랑이다. 또 누군가에겐 ...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교회 개혁은 현재진행형… “칼뱅처럼 믿고 웨슬리처럼 전도하자”
  네덜란드 레이든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 전경. 영국의 청교도 등을 기념하는 명판이 교회 외벽에 부착돼 있다. 장 칼뱅의 개혁 영성은 스위스에서 프랑스, 독일과 네덜란드, 폴란드 및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거쳐 마침내 한반도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바울이 탄 배가 유럽을 싣고 갔다”는 복음 파급의 비유법이 16세기 칼뱅에게서 재현된 것이다. 필자는 칼뱅의 개혁사상 진원지로 그가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를 주목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몇 명의 제자와 함께 시작한 복음의 역사가 유럽 각지로부...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교회 바로 세우기 위해 불후의 대작 ‘기독교강요’ 집필
프랑스 느와용의 칼뱅 생가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기독교강요’ 초판으로 1536년 출판됐다.   스위스 바젤의 역사박물관 전경. 중세 성당을 개조해 1894년 개관했다.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역사박물관 중 하나다.   서대천 목사 루터와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은 ‘행동하는 영성가’였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당시 부패한 교황권에 맞서는 한편,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불후의 대작들을 집필했다. 루터의 ‘대교리 문답’과 칼뱅의 ‘기독교강요’ 집필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무진의 나그네 말씀에 복종하고 기쁨의 빛 얻다
소설가 김승옥에게 '안개'는 하나님이 부재한 '혼돈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그는 빛을 따라 걷고 있다. 순천만문학관에서 바라본 외부 전경이다. 왼편으로 순천만 방죽길이 펼쳐져 있다.   순천만문학관 내에 마련된 김승옥관.   전남 순천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습지의 S자 수로와 광활한 갈대밭 그리고 갯벌.   김승옥 '무진의 나그네'는 지금 어느 길목쯤 서 있는 것일까. '감수성의 혁명'이란 찬사와 함께 1960년대 문학의 반짝이는 별이었던 김승옥(75). 그는 빼어난 문체로 당시 미래가 불...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진정한 개혁 위해 말씀으로 무장된 순교적 목회자 양성”
제네바 아카데미 전경으로 칼뱅이 1559년 설립했다.   제네바 아카데미 현관 위 종석(宗石)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 9장 10절 말씀이 새겨져있다(왼쪽). 칼뱅의 무덤은 그의 요청에 따라 아무런 표식이 없다. 다만 화란 출신 신학생이 칼뱅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곳에 칼뱅의 이니셜이 새겨진 돌을 남겨 두어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오른쪽).   서대천 목사 (홀리씨즈교회) 필자가 이번 답사를 통해 관심을 가진 것은 칼뱅의 개혁운동에서 그의 교육사상과 그 실천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칼뱅의 종교...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이 시대 아벨의 울음 들었는가
고행·묵상·청빈을 삶의 지표로 삼은 고정희 시인은 스무 살 때까지 전남 해남 고향집에 머물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열린 창호지 여닫이문 사이로 시인의 손때 묻은 책들과 물건이 보인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생가 전경.   시인이 친필로 쓴 '고행·묵상·청빈'. “애비는 돌아와/ 아내의 무덤에 비문을 새긴다…절제된 침묵을 무덤에 새긴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만납시다’…시온을 구하시러/ 강물처럼 그가 달려오리니/ 슬픔은 슬픔으로 구원받...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하나님 절대 주권이 지배하는 교회와 국가 꿈꿨다
생 피에르 교회 바로 아래에 위치한 마들렌느 교회로 칼뱅이 주중 설교와 신앙교육을 행했던 장소이다. 생 피에르 교회 내부에 전시되고 있는 칼뱅의 의자로, 병약해진 칼뱅이 서서 설교할 수 없어 앉아서 설교했다.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준 파렐 모습(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칼뱅 칼뱅은 1541년 스트라스부르 사역을 마감하고 3년 만에 제네바로 귀환하게 된다. 칼뱅에게는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떠난 후 제네바의 사정은 더 나빠져 교회는 개혁의 의욕을 상실하고 있었으며, 사회질서가 무너져 걷잡을 수 없는 세속화의 길을 ...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고독과 눈물, 신을 향해 벌리는 팔이 더욱 커지다
선교사묘원을 향해 조성된 고난의 길.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곳에 묻힌 선교사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걷는 길이다. 왼쪽 사진은 가을 향기를 닮은 커피를 좋아했던 김현승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 남구 제중로 47번길에 꾸민 ‘다형다방’ 내부.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가을의 기도’ 시비.   광주 최초 교회인 양림교회.   오웬 선교사와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오웬기념각.   김현승 광주 남구 양림동은 근현대의 시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제 심장을 주님께 바칩니다” 개혁에 목숨 건 칼뱅
칼뱅 후예들의 예배처소였던 부클리에 교회 옆 칼뱅이 거주했던 집. 지금은 교회 참사회 소속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칼뱅이 처음 장소를 빌려 목회했던 위그노 교회인 생 니콜라 교회 전경.   제네바의 생 피에르 성당. 이곳에서 칼뱅은 성경 교사를 시작해 얼마 후 목회자로 사역하게 된다.   칼뱅의 순종을 나타내는 문장(紋章)으로 "주님께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 바로, 그리고 신실하게!"라고 새겨져 있다. 칼뱅이 파렐에게 보낸 편지 글귀이기도 하다.   서대천 목사 1536년 7월 어느 날, 한 청년이 ...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나는 당신의 종’ 고백한 칼뱅, 말씀 붙들고 개혁의 광야로
장 칼뱅이 1509년 7월 10일 태어나 수개월간 살았던 장소로 지금은 칼뱅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칼뱅이 12세 전후에 다녔던 귀족 자제를 위한 학교인 콜레주 드 카페트 전경.   칼뱅이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다녔던 욱스캉 수도원 전경.   칼뱅 박물관에 전시된 칼뱅의 친필 사인. 번역하면 ‘나는 당신의 작은 종입니다’로 해석된다. 봄이 오면 온 산천에 꽃이 피듯,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16세기 종교개혁의 바람은 울타리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하나님의 시간이 도래하자 부...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시대의 어둠에서 ‘민중’을 싹 틔우다
소설가 박화성은 60여년의 작가생활을 통해 기독교 정신이 담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남 목포시 목포근대문화역사관 1관 뒤편 일제가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공호 속에서 자라고 있는 풀잎의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목포문학관 앞에 세워진 박화성의 흉상과 시비.   정명여학교 내에 있는 옛 선교사주택.   박화성 작가가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 했던 양동교회.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목포근대문화역사관 1관 전경.   박화성 초상화와 장편소설 ‘백화’의 표지.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방공...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2편>] 지금 교회는 개혁자들이 애써 찾은 하나님에게 다시 돌아가야
존 웨슬리의 신성구락부 출발점이 되었던 옥스퍼드성(城) 감옥 전경. 웨슬리는 당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성결운동을 전개했다.   스위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벽'으로 파렐 칼뱅 베자 녹스의 모습을 새긴 대리석 조각상.   칼뱅 생가 박물관에 전시중인 기독교강요 초판.   서대천 목사 제2편 '오직 그리스도'를 시작하며 필자는 '오직 그리스도'의 종교개혁 현장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4개국을 답사했다.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진행한 장 칼뱅과 예정론 항의파인 아르미니...
입력:2017-06-05 10:25:01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1편>] 성경읽기로 복음의 정수 인식… 중세교회 교황권·연옥설 거부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가 출생한 통나무 집 전경.   생가 인근에 세워져 있는 츠빙글리 기념비.   통나무 집 현관에 생가를 알려주는 푯말이 붙어있다.   주도홍 교수 츠빙글리가 태어나서 여섯 살까지 성장했던 빌트하우스로 향했다. 취리히에서 츠빙글리의 생가로 가는 길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스위스는 이토록 잘 정돈되고 정갈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울창한 푸른 숲, 거대한 위용의 백설 산꼭대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풍경화였다. 하나님은 멋진 창조주라는 점을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
입력:2017-06-05 10:25:01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고독하지않았다… 그리스도와 창조하신 자연 있음에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동신리 사갑들판은 박두진 시인의 시작(詩作) 공간이었다. 지평선 끝자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논밭 뒤로 청룡산이 나즈막하다. 시인은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 산 위로 솟아오르는 해, 밤하늘의 별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안성시 금광면 금광저수지 인근 혜산의 집필실.   안성시립보개도서관 앞에 세워진 박두진 시인의 비이다. 비에는 "詩는 모든 것 위에서 최고의 비판이자, 최고의 도덕적 이상 미학이며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시인 박두진   첫 시...
입력:2017-06-05 10: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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